조성헌 <동보종합물산 고문>

서울 강남지역에서 중.고생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들은 옷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한다.

국산 유명브랜드의 옷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외제옷이 아니면 입지
않으려는 자녀들 때문이다.

이러한 외제 선호의식은 옷뿐만 아니라 모자 책가방 신발등 겉으로
나타나는 것은 모두 경쟁적으로 가지려고 한다.

어느 여론조사기관에서 강남의 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소지한 물품을
조사한 결과 무려 85%가 외제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만일 외국 유명메이커를 입지 못하면 동아리모임에서 소외당한다는
의식때문에 학부모들은 터무니없는 옷값에도 불구하고 자녀의 기를
살리기위해 생활비 부담속에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사주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서울의 강남지역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지방대도시에서부터 농촌지역에까지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옷에 목숨거는" 이같은 현상은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성인
상당수도 그런 현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름없는 중소업체에서 만드는 싼옷들이 안 팔리는 대신 백화점의
외국 브랜드 옷매장이 "성업중"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옷차림에 놀라움을 표시하곤
한다.

유행따라 철마다 새옷을 구입해 입는 탓에, 낡았다 싶은 옷은 입은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헌옷은 수재민돕기 창구에서도 푸대접받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이토록 옷차림에 신경을 쓰는 것은 아마도 자기과시욕과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는 것때문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과거 못살고 못입던 "한"을 보상하는 심리에서 지나치게
좋은 옷을 입고 싶어하는 자기과시욕이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기에 조선500년간 형식과 허례허식을 중시하는 인습에 젖어 의복이
자기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모든 행동을 남이 나를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 왔다.

물론 그것은 과거 공동체마을의 질서를 유지시키는 중요한 관습이었다.

마을에서는 다른 사람들 눈 때문에 구성원 누구도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짓을 쉽게 하지 못했다.

마을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사람은 공동체로 부터의 추방도
각오해야 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미풍양속의 본말이 전도됐다.

요즘 우리는 차림새나 씀씀이를 과시하는 데서는 남의 눈을 대단히
의식한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차례를 지키는 데서는 남의
눈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좋은 의미에서 남의 눈을 의식하는 우리의 미풍양속을 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웃과 정을 나누고 이웃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기를 기대하며
사는 것은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 관습이다.

그러나 이웃으로부터의 좋은 평가는 멋진 옷차림이나 과시적인 씀씀이가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의 규율을 지켜나가는 마음씀씀이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속담에 "화류계 정은 3년이요, 본처의 정은 100년"이라했다.

외모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