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대는 공산당에서 낸다"

소련의 위세가 아직도 한창이었던 시절, 나돌았던 우스갯 소리다.

지하의 브레즈네프 서기장동무는 물론 절대로 그런적 없다고 하겠지만,
그것은 반드시 사실이 아니라고만 하기도 어려운 일면이 있다.

그 당시의 루블화와 달러간 공식환율은 1대1.

입국할 때 공식환율로 1백달러를 루블로 환전한 사람이라면, 출국할
때 1백루블까지 달러로 되바꿀 수도 있다.

문제는 그 당시의 암시장환율이 2대1이상이었다는데 있다.

정열적인 "북극의 여인"과 즐거움을 나누고 1백달러 지폐를 내면
거스름돈으로 1백루블을 되돌려 받을 수 있었고, 이 1백루블은 출국할때
다시 1백달러지폐로 돌아오는 꼴이었다.

밤의 여인이 1백루블을 챙겼지만 관광객의 지출은 없었다는 즐거운
계산이 나온다.

화대 1백루블, 그것은 누가 지불했는가.

공짜로 즐길 수 있다는 계산때문에 소련을 찾는 관광객들의 "욕망"이
얼마나 부풀려졌는지, 그 수요증가에 따라 "공급물량이 어떻게 증가했는
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정부통제로 잘못 매겨진 가격은 그것이
루블값이건 아파트값이건, 소련에서건 한국에서건 예상하지 못했던
폐해를 결과한다는 점이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낳기 때문에 그 폐해는 특히 심각할 수밖에
없다.

그 단적인 예가 70년대말의 아파트값이다.

수요와 공급에 아랑곳없이 정부가 책정한 분양가, 당첨되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순박한 가정
부인까지 이른바 복부인으로 탈바꿈시킨게 그때다.

그 당시 시멘트 한 포의 시중가격은 2천원을 웃돌았으나 정부고시가격은
5백원대.

고시가격을 기준으로 물가통계가 작성됐으니 도매물가지수건 소비자
물가지수건 모두 엉터리였을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엄청난 규모의
지하경제를 양산한 꼴이 됐다는 점은 특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시멘트 한포를 팔았을때 정부고시가격과 시중가격간 차액, 곧 거래액의
4분의3이 엄격한 의미에서 모두 지하경제였다고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생산업체는 공식적으로 정부고시가격밖에 받지못하고, 그 3배에 달하는
차액은 장부외거래 등의 형태로 이루어져 생산업체가 아닌 특정관계자들
몫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부당소득에 세금이 매겨지지 못했을 것은 물론이다.

대호황이었지만 생산자인 법인체의 수익은 별 볼일이 없고 재무구조도
개선되지 못하는 모순도 빚어졌다.

2차 석유파동으로 물가고가 대단했는데도 80년에 공산품에 대한 최고
가격지정 등 가격통제를 대폭 해제한 것도 따지고보면 가격통제의 폐해를
체험한 결과였다고 볼 수 있다.

80년대이후 정부는 교통요금 등 몇몇 가격외에는 가능한한 개입하지
않는 방향으로 일관해왔는데, 이는 "자율" "시장기능" 등을 강조해온
정책방향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이런 저간의 과정을 되새겨보면 최근들어 정부가 다시 가격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나선 것은 정말 딱하게 느껴진다.

해서는 안될 일, 부작용만 있을 뿐 긴 안목으로 봐 실익은 없는 것이란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또 그것을 되풀이하겠다고 나선 사정은 뻔하다.

당초의 경제운용계획에서 목표로 했던 성장.국제수지는 이미 물건너갔고
물가라도 4.5%를 지켜야 "3마리 토끼 다 놓쳤다"는 소리 안들을 것
아니냐는 경제정책당국자들의 조바심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행정력을 동원해 가전제품값을 최고20% 내리도록 하는 등으로
4.5%를 지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냉정히 따지면 정부 체면을 살리기 위한 "사실의 왜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가격규제는 그로인한 폐해나 후유증을 차치하더라도 실효성이 없이
때문에 정책으로서는 낙제다.

값을 누르면 양이 줄거나 질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고, 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 큰 폭으로 치솟는 반동작용을 나타내게 마련이다.

따지고보면 가격은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성질의 것이다.

원인은 그대로 두고 결과를 바꾸려는 가격규제, 그것은 중한 병이 들어
얼굴색이 창백해진 사람에게 피부병치료를 하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실효성은 없고 부작용만 엄청나게 크다는 점에서 가격규제는 규제
중에서도 최악의 규제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런게 "행정규제를 없애겠다"는 요란한 구호속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은 정말 우려할만한 일이다.

"무조건 값을 내리라"는 비논리가 횡행하는 현실아래서는 기업경영도
합리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마련이다.

시장에서 이루어져야할 가격결정이 관청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치러야할
비용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항상 관청에 드나들어야 하는 비용, 결국 소비자에게 전아될 부담은
제1차적인 직접비일 뿐이다.

생산성과 수익성을 높이는 일이 공장에서 보다 관청출입에서 좌우되기
때문에 치르야할 조직내의 가치관혼돈 등 무형적인 비용은 그 누구도
계량하기 조차 어렵다.

경영이 나빠져 내년에는 임금을 동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제품값을 내렸을 때 근로자들은 회사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수물가를 4.5%이내에서 억제하기위해 우리는 이런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