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의 차에 어느 회사의 부동액제품이 들어있는지 아십니까"

이같은 질문에 자신있게 "알고 있다"라고 대답할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도 드물 것이다.

자가용차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겨울을 앞두고 주변 카센터(자동차
경정비업체)에서 부동액을 넣는다.

이때 어느회사의 부동액제품을 쓸 것인지는 대부분 카센터가 결정한다.

차주인은 "좋은 부동액을 넣어 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다.

부동액값도 카센터에서 달라는 대로 주는게 보통이다.

제품값외에 카센터직원의 서비료인 "공임"이 포함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부동액만의 가격을 정확히 알수가 없다.

실수요자인 차소유주들이 완전히 배제된 부동액시장.

자가용 소유주들은 어느 회사에서 어떤 제품이 나오는지를 제대로 모른다.

부동액 가격과 품질을 검토하고 제품구입여부를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소매상인 카센터이다.

"부동액의 최종소비자는 카센터"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부동액은 "제조업체->대리점->부판점->카센터"로 유통된다.

직영주유소나 운수회사등 일부에서만 부판점 단계를 거치지 않고 대리점
에서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대리점과 부판점은 공급받은 가격에 각각 5%정도의 마진을 붙인다.

공장도가격이 5,000원인 4l들이 부동액의 경우 부판점을 거쳐 카센터에
공급되는 최종가격은 5,500원 수준.

하지만 카센터는 부동액 교환에 들어가는 인건비를 포함해 2만원 정도를
자가용차 소유자로부터 받는다.

"공임"값이 제품값의 두배가 넘는 셈이다.

카센터가 부동액을 선택할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가격이다.

품질에 큰 차이가 없으므로 이익을 많이 남기는 값싼 제품을 넣는다.

가격에 앞서 품질을 생각하는 자동차소유주들과는 입장이 완전히 다른
셈이다.

대기업인 정유사에서 생산된 제품이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공 LG정유 한화에너지 한국쉘등은 대리점에 부동액 한통(4l 짜리)을
5,000원대에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제품은 3,000~4,000원이다.

대기업제품이 20%이상 비싸다.

이로인해 대기업의 부동액시장 점유율은 30%에도 못미치고 있다.

제조업체 가운데 매출액이 20억원을 넘어서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계열주유소부설 카센터에서 팔리는 것을 제외하면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은
더 떨어진다.

국내부동액 시장은 대리점에 공급되는 가격을 기준으로 할때 300여억원
규모이다.

제품수요도 날씨가 쌀쌀해지는 10월과 11월에 집중돼 있다.

부동액메이커들은 이처럼 시장규모가 적고 늦가을에만 팔리는 부동액제품에
대해 TV나 신문광고를 하지 않는다.

카센터에 홍보전단을 뿌리는게 고작이다.

카센터가 소비제품을 선택하는 최종소비자의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굳이
불특정다수를 상대로하는 값비싼 광고에 돈을 쏟아부을 필요가 없기 때문
이다.

그러다보니 부동액시장에서 30여개가 넘는 중소기업이 주도하는 상황이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LG정유 윤활유영업팀 이재동차장은 "한철 반짝장사를 하기 위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중소기업 제품보다는 대기업제품이 훨씬 믿을만하다"고 말한다.

중소기업들 중에는 한번 제품을 생산하고 없어지는 회사가 많다는 얘기다.

그는 "품질을 보증할수 없는 중소기업제품이 시장에 많이 나도는 것은
단지 싼 가격때문"이라고 덧붙인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부동액은 대부분 EG(에틸렌글리콜)계열 제품이다.

EG는 냉각성능이 뛰어나면서 겨울에 얼지 않는 특성을 갖고 있다.

부동액 내용물중 9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10%는 부식방지용 첨가제이다.

첨가제는 1년정도 사용하면 고열등으로 인한 화학적 변화가 생긴다.

부동액을 1년만에 갈아주어야 하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회사들마다 다른 성분의 첨가제를 사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제품이 주도하는 부동액시장에 최근 변화를 시도하는 대표적인
업체는 LG와 유공. LG는 올해 3년이상 사용할수 있는 부동액 "맥스쿨"을
내놓았다.

고열에 파괴되는 첨가제성분을 개선, 부동액사용연한을 종전의 3배로
늘렸다.

가격은 기존제품보다 절반정도 비싸지만 사용연한이 늘어난만큼 부동액
교환비를 절약할수 있다는게 이 회사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점이 시장에서 얼마나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제품이미지가 약한 부동액시장에서 판매량은 카센터의 의지에 달려 있다.

카센터 입장에서는 1년짜리 제품을 파는게 3년짜리 보다 유리하다.

유공은 환경친화적 제품으로 시장에서 승부를 걸고 있다.

냉각제인 EG를 저독성 저공해물질인 프로필렌글리콜(PG)로 바꾼
"슈퍼A그린"이 그것이다.

유공 윤활유사업팀 김태형팀장은 "PG부동액의 가격은 다소 비싸지만
차내에 유해한 가스가 스며들 염려가 없고 무단방류로 인한 오염도 줄일수
있다"며 앞으로 부동액시장이 EG계열에서 PG계열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환경친화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도 소비자들이 제품차이를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카센터에서 3년을 사용할수있는 부동액을 넣더라도 소비자들이 타성에
따라 1년만에 부동액을 교환하면 돈만 낭비하는 꼴이 된다.

부동액메이커들의 시장흐름을 바꾸려는 이같은 시도가 성공할 것인지의
여부는 결국 소비자 인식에 달려 있다고 할수 있다.

< 현승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