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에서 남쪽으로 96km가량 떨어진 나일강변의 엘 쿠레마트지역.

달리는 차창밖으로 낙타나 나귀를 탄채 생업에 종삼하는 유목민들의 모습이
간헐적으로 눈에 뛰고 야채나 양고기를 널어놓고 파는 이집트 전통시장
(수크)도 나타난다.

세계적 관광지인 기자피라미드와 사카라피라미드도 도중에 지나게된다.

겨울 한때를 제외하고 항상 뙤약볕에 뜨거운 모랫바람이 부는 이곳은
요즘 대림산업의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이 한창이다.

내년 7월 완공될 이 발전소는 거대한 나일강의 물줄기를 빨아들여
척박한 이집트 전력환경에 숨통을 틔울 예정이다.

대림산업은 7만여평에 이르는 넓은 부지에 발전소 전체시설의 뼈대를
세우고 만드는 토목공사를 벌이고있다.

중장비가 먼지를 풀풀 날리며 현장을 움직이고 대형크레인이 이동하는
좁은 틈새를 타고 곳곳에서 용접기의 불꽃을 찾아볼 수 있다.

강줄기를 따라 옮겨지는 건설자재를 처리하기위해 나일강변에 몸채를
반쯤 담근 크레인의 모습도 이채롭다.

선천적으로 낙천적이라는 이집트 근로자들의 아슬아슬한 곡예(?)는
또다른 구경거리.

자재를 든채 이제 겨우 골조가 갖추어진 건물을 함부로 나다니는
이집션들의 표정에는 불안을 찾아볼 수 없다.

죽고 사는 것은 오로지 "신의 뜻"(인샬라)에 달려있다는 믿음때문이다.

인샬라덕분이었던지 그동안 안전사고는 한건도 없었다고 한다.

이번 공사규모는 600 급 발전소2기로 이집트 역대 발전시설공사중
최대규모.
설계도및 제작도면만 1,800장에 이를정도이다.

대림산업은 지난 94년 6월 발주처인 이집트전력청 산하기관인 EEA로부터
디자인.구매.토목공사를 패키지로 묶는 턴키수주방식으로 공사를 따냈다.

근로자들은 대림산업소속 근로자 21명을 포함해 현지인까지 모두
450여명.

현지 하청인부들도 250여명에 달하고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힘든 작업여건외에 나쁜 기후환경과
싸워야하는 이중고를 겪으면서도 차질없이 공사를 진행시키느라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있다.

현재 공정은 약 80%수준.

목표치에 다소 부족한 공정률이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발걸음이 더욱
빨라지고있다.

눌러쓴 안전모아래로 쉴새없이 땀이 흐르고 검게 그을린 피부에 주름이
깊어가지만 미처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이곳을 포함해 중동지역 건설현장에서만 20여년을 보낸 이내탁반장(55)은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반드시 누군가 해야할 일"이라며 "해외로 20여년을
떠돌다보니 회의가 들 때도 있지만 긍지와 보람을 느낄 때가 더 많다"고
말했다.

17개공사로 나뉘어 발주된 이 공사에 적용되는 품질및 규격기준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의 것.

대림산업은 지난 94년에 획득한 ISO9002를 바탕으로 "대림품질보증지침서"
를 작성, 발주처의 어려운 요구조건을 충족시키고있다.

이 지침서를 통해 설계 품질 공정 안전 시공 자재관리등 모든 단계별
공정을 투명하게 살펴볼 수 있으며 미비점이 발견될 경우 즉시 현장에서
개선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공사비용절감에도 상당한 도움을 주고있다.

기술엔지니어 김헌탁차장은 "최근들어 외국건설사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동건설현장에도 가격파괴바람이 불고있다"며 "품질개선과
함께 원가절감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대림산업은 이번 공사를 포함해 지금까지 이집트 총발전시설공사의
25%를 해냈다고 한다.

최근에 완공된 시나이반도 아리시지역의 30MW급 2기를 비롯해 지난
82년부터 88년까지 쇼브라지역에 건설된 300MW급 발전소 4기, 다미에타지역
300MW급 3기, 아슈트지역 300MW급 1기등 곳곳의 발전소들이 대림산업의
작품이다.

대림산업이 이집트인들에게 안전.성실시공의 대명사로 알려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셈이다.

알렉산드리아공대를 졸업하고 현지 엔지니어로 대림산업에 입사한
요셉 아메드(29)는 "대림산업의 급여나 후생수준은 이집트내에서
최고"라며 "훌륭한 회사에서 기술을 배울수 있는 기회를 갖게돼
상당히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림산업은 철저한 현장접근으로도 유명하다.

엘 크라이마트만해도 기반시설이 인근 카이로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열악한 수준이지만 아무도 카이로에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없다.

유덕희소장을 비롯해 모든 엔지니어및 근로자들이 건설현장옆에
마련된 임시숙소에서 동고동락하고있다.

퇴근무렵이 되면 4 가량의 건강달리기로 체력을 다진 뒤 이집트
요리사가 제공하는 한국음식들로 즐거운 저녁식사자리를 만들어나간다.

"어렵사리" 한국에서 공수돼온 소주가 한순배 도는 날이면 어김없이
구성진 노래가락이 쏟아진다.

숙소에 설치된 노래방시설도 주흥을 돋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막소주를 나누는데는 상하가 따로 없다.

갓 입사한 신입사원과 현장의 고참근로자들이 서로 격의없이 어울리는
모습이야말로 대림인의 자랑이다.

유소장은 "모두가 서로 한가족처럼 생각하며 지낸다"며 "해외건설현장에서
대림산업 근로자들이 전문화 정예화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화목한
분위기때문"이라고 소개했다.

모랫바람이 심하게 불때면 피라미드도 덮어버린다는 열사의 땅 이집트.

이곳에서 땀과 노력의 가치를 일깨우며 "건설입국"의 전통을 이어가고있는
대림산업의 사나이들이 있기에 한국경제의 뿌리가 세계곳곳에서 그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조일훈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