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화폐통합 체제가 오는 99년 1월 출범될 예정이다.

첫차를 탈수 있는 국가는 내년말 현재 각국의 재정적자 공공부채 인플레
금리수준 등 경제성적표를 감안, 98년초 결정된다.

회원국들은 특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 3%이내''라는 가장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온갖 방안을 마련중에 있다.

GDP 대비 공공부채비율 60%이내로 끌어내리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내년도 예산을 긴축 편성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몇개국이 99년호에 탑승하게 될 것인가.

현재 확실한 것은 룩셈부르크가 이미 참여기준을 충족했으며 덴마크와
아일랜드도 승차자격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뿐이다.

통합 주도세력인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대부분 회원국들이 여전히 통과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폐통합에 선발대로 참여하려는 회원국들의 의지는 굳건하다.

선택적 참여를 내세운 영국,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친 스웨덴과 덴마크,
경제력이 열세인 그리스를 제외한 나머지 11개 회원국은 실현 여부에
관계없이 통합기준에 맞춰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했다.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각국정부는 사회보장제도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으며 그래도 부족한 세수는 회계상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순발력(?)을 발휘중이다.

금년말 재정적자 규모가 GDP대비 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독일은 3%를
훨씬 밑도는 예산안을 마련중이다.

그 방안으로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 지난달 재정지출을 700억마르크(GDP의
1% 상당)를 삭감할수 있는 이른바 내핍법안을 의회 통과시켰다.

프랑스는 내년도 재정적자를 정확히 3%로 계상했다.

내년도 연방및 주정부의 재정적자폭은 3.45%에 이를 것이나 민영화 대상인
프랑스텔레컴이 비축한 연금부담액 375억프랑(GDP 대비 0.45%)을 정부수입
으로 이전하는 묘수를 뒀다.

재정적자가 7%에 육박하는 이탈리아는 "화폐통합세"를 신설하는 한편
회계기준을 변경, 79억달러 상당의 재정적자를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금년초까지 기준충족에 난색을 표명해온 벨기에는 중앙은행 보유 70억달러
상당의 금괴를 매각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며 스페인 포르투갈 등도 3%및 60%
마술을 풀기 위해 고육책을 마련중이다.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 지난 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에서 결정한 화폐통합
참여기준을 고수할 경우 11개 희망국이 모두 통합 첫차를 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공공부채 비율이 100%가 넘는 벨기에와 이탈리아가 이를 60%이하로 끌어
내리기는 역부족이다.

오스트리아 중앙은행의 아돌프 발라총재는 스페인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국가들이 첫차를 타는데 비관론을 표명했다.

독일 6대 경제연구소는 지난달 30일 독일도 이 기준을 맞추는데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게다가 EU통계국인 유러스타트와 집행위가 공동으로 회계조작을 감시키로
결정한후 프랑스의 회계방식에 난색을 표명, 프랑스의 참여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따라서 독일과 프랑스를 포함,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아일랜드 핀란드 등
6~8개국 정도가 선발팀에 가담하면 성공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은 다음차로, 그리스는 영국 덴마크 스웨덴이
가입한 이후 탑승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담고 있다.

그러나 EU 회원국 정부들은 화폐통합 참여 못지 않게 이를 계기로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재정적자의 주범이 되고있는 사회보장제도를 대폭
개혁할수 있다는데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록 통합 첫차를 타는데 실패하더라도 복지제도를 개혁하면 큰 성과란
생각이 깔려 있다.

사회보장부담이 미국과 일본이 GDP 대비 10% 남짓한데 반해 독일 네덜란드
등은 30%를 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납득이 가는 계산인 셈이다.

독일정부가 지난 9월초 의회를 통과시킨 이른바 "내핍법규"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 법규는 사회보장제도의 3대 핵인 실업 건강 연금의 수혜조건을 엄격히
규제, 국민들이 누려온 복지혜택을 대폭 축소시켰다.

프랑스는 내년 예산안에서 사회보장적 지분을 현행 GDP 대비 0.6%에서
0.3%로 끌어내린다는 방침을 정하고 새틀짜기 작업에 한창이다.

문제는 이를 위해 회원국들이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 하나가 선화폐통합 정책을 고집, 긴축정책을 펴면서 경제가 회복의
뒷심을 잃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94년 일시 회복기미를 보였던 유럽경제가 지난해부터 또다시
하강국면에 빠져든 것은 그해부터 긴축정책을 선택한 결과였다.

유럽 건설산업연맹(ECIF)은 최근 화폐통합 추진이 공공분야의 건설붐을
위축시켜 내년말까지 적어도 25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 우려했다.

이에 따라 유엔 유럽경제위원회는 "유럽경제가 회복기조에 안착하기도 전에
각국 정부가 긴축정책을 추진, 경기둔화를 부채질하고 있다"며 화폐통합시기
를 다소 연기하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유럽정부들도 이같은 현실을 인식, 저금리 정책을 유도, 경기를 부추기려
안간힘을 쏟고 있다.

독일은 지난 8일 재할인율을 사상최저치인 연 3%선으로 끌어 내렸다.

프랑스는 이에 화답하듯 주요금리를 내린데 이어 한달후 또다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스페인도 이달초 내년 긴축예산안을 발표한 직후 금리를 내리는 등 유럽내
금리인하 바람이 또한차례 불어닥칠 분위기다.

그러나 위축된 유럽경제를 감안할때 재정확대책을 접어두고 금융완화로
경기를 끌어 올리기는 역부족인 입장이다.

실례로 독일과 프랑스는 지난 1월말 주택대출자금 금리의 인하, 기업조세
감면 등을 골자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발표했으나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1~1.5%에 머물 것이라는게 일반적 관측이다.

독일은 마르크화의 약세에 힘입어 3.4분기중 경기가 회복기미를 보였으나
실업률은 사상최악인 10.4%를 기록했다.

프랑스의 9월중 소비지출은 전월대비 1.5% 떨어졌으며 실업률도 12.5%에
이를 전망이다.

유럽연합(EU)이 금년도 15개 회원국의 평균 경제성장 예상치를 당초 2.6%
에서 1.5%로 하향 수정하는 등 다른 회원국의 경제여건도 양국과 비슷한
실정이다.

유럽전역의 "시위주의보"가 확산되는 등 화폐통합 작업이 근로자들의
저항을 유발하는 문제점도 뒤따르고 있다.

독일의 경우 병가수당을 20% 삭감하는 내핍규정에 대항, 지난달 24일
40만명의 근로자들이 대규모 시위를 펼쳐 관련 산업을 마비시켰다.

프랑스는 지난달 17일 공무원 감축과 임금 동결에 반대, 168만 공무원의
3분의1이 파업에 참여했다.

이를 주도하는 공산당 노조단체인 CGT는 앞으로 시위는 보다 거세질 것
이라고 경고, 지난해 연말의 장기파업이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마저
감돌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 독일 등은 비참여국이 유러 결제시스템인 "TARGET"의 이용을
제한하자고 주장, 영국 스웨덴 등 불참국가들과 심각한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영국측은 화폐통합은 유럽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독일과 프랑스의
사기극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화폐통합이 예정대로 진행될지는 아직 속단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내년말 회원국들의 경제여건이 그만큼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회원국 정부들은 화폐통합으로 기업의 자금거래에 따르는 부담을 줄이고
복지제도및 세제를 개혁할수 있는 호기로 삼고 있다.

그러나 경기둔화, 근로자들의 반발, 회원국간 갈등 등 이에 따르는 무거운
짐이 회원국정부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