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도 5월에 정식 출범한 (주)벽산 축구부는 40여명의 정식회원을
확보하고 회사내에서 가장오랜 전통과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동아리다.

남편이 몸이 약해 건강을 위해 새벽일찍 근처 조기 축구회에 반강제로
내 보냈더니 이제는 축구에 미쳐 일요일마다 운동장에서 하루를 다 보내
건강은 찾았지만 대신 남편을 잃었다고(?) 목멘 하소연을 하는 부인에게
"나는 이혼은 할수 있어도 축구는 버릴 수 없다"며 초강공책으로 밀어부치는
스트라이커 김철주 과장이 있는가 하면 후보 신세를 면해보겠다고 1년동안
피나는 훈련끝에 당당히 주전자리를 차지해서 신입회원들의 모법이 되고
있는 박영기 과장, 의욕은 있지만 몸이 말을 안듣는지 경기를 하고나면
어김없이 멍들고 까지는 쌩쌩돌이 라이트윙 김재호 대리, 유도 1단의
듬직한 체구로 수비라인의 핵 유찬열 과장 작년대회 우승시 준결승에서
4골을 성공시킨 골잡이 손영배 계장 등 독특한 개성들의 회원들이 오늘도
축구공 하나에 마음을 모아 운동장을 휘저으며 체력강화와 조직의 단결과
화합을 키워나가고 있다.

(주)벽산 축구부는 축구경기가 끝난후 뒷풀이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운동이 끝나면 목욕을 하고 맥주집에 모여 그날의 경기를 평가 할뿐만
아니라 그동안 있었던 회사일도 자연스럽게 나눌수 있어 업무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90년도로 기억이 된다.

한강 직장 축구 리그전에 참가하여 준결승이 열리는 10월 토요일
오후였다.

회원뿐만 아니라 많은 직원들이 참여하여 조선 맥주팀과의 경기를
열심히 응원을 하였다.

전후반 1:1로 무승부가 되어 연장전까지 치뤘지만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차기가 진행될 순간에 응원단이 슬렁되기 시작했다.

하필 그날 회사 산악부가 1박2일로 설악산 등반을 가는 날이었다.

따라서 많은 응원단들은 축구경기가 늦게 끝나게 되니 안절부절이었다.

그때 최고선배인 윤병동 부장의 한마디에 끝까지 응원을 했던 기억이
난다.

"택시를 타고 설악산까지 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응원해야한다
이것이 벽산인의 정신이다."

그날 버스는 이미 출발하여 택시를 타고 뒤를 쫓아 구리시 부근에서
잡을 수 있었다 한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환영 축구시합을 통해 선후배간의 동료애를
돈독히하고 신입회원도 가입도하고 매년 직급별로 선후배간 축구시합을
열고 있다.

매주 토요일 인근 학교운동장에서 모임을 갖는 원칙을 갖고 있으나
토요휴무를 쉬는 직원이 많아 월 토요 2회정도 모임을 갖고 있으며 해가
긴때는 평일에도 업무끝난 후 모임을 갖는다.

오랜 전통속에 조직력도 많이 향상되었다.

18개팀이 참가한 95년도 전국건설노동조합연맹 축구대회 에서 당당히
우승한 전력도 갖고 있다.

회장에 김호영 과장을 비롯하여 총무 조덕진 대리 코치 손영배 계장의
40여명의 회원들은 축구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면서 키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지방에 근무하는 공장 및 지점 직원들과 원정경기를 통해
전국적인 유대를 갖고자 한다.

(주)벽산과 함께 축구부는 영원하리라.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