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개헌의 경제적 필요성 .. 이영선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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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왜 존재하는가,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은 왜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는가, 왜 국민들이 값비싼 세금을 내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극진히 모셔야 하는가, 그들이 인격적으로 뛰어나거나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일까.
최근 경제학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신정치경제학(공공선택이론)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에게 월급은 물론 명예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국민들의 삶을 보다 좋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러면 정치는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어떻게 기여할수 있는가.
정치는 자유시장이 할수 없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다리와 도로 혹은 법질서와 같은 공공재를 공급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정치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데도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가 꽉꽉 막히며 법질서가 난장판이다.
정치가 과연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최근 개헌논의가 제법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정치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제도를 거론하면서 정치의 존재이유인 국민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논의는 없다는 것이다.
개헌논의의 관점이 오로지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놓여있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국민들은 자연인 누구가 권력을 잡든 관심이 없다.
누구든지 국민의 삶에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제도를 선택할 것인가는 어떤 제도가 국민들의 경제적
삶을 정치에 잘 반영할 수있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개헌에 대한 논의는 정치인이나 정치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제인이나 경제학자의 참여도 필요로 한다.
정치적 권력의 결정에 운명을 내맡기던 경제인들이 정치권의 눈치만 볼 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고속도로가 막혀 물류비용이 엄청나도 정치권에 한마디
소리도 못하는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정치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그 주어진 정치제도 안에서
경제적 최적만을 찾겠다는 한갓 경제기술인으로의 경제학자의 역할은 재고
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정치제도가 한국 국민의 경제생활에 바람직한가.
우선 최근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내각제를 보기로 하자.
내각제가 국민들의 장기적인 경제생활에 도움을 줄수 있기 위해서는 이념에
근거한 양당정치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당의 지속적 이합집산에 의해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될
뿐 아니라 장기적 국가경제방향이 설정되지 못할 것이다.
이념이나 정강정책으로 묶여져 있기 보다는 인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내각제는 국민의 경제생활은 무시된 채 정치인의
권력배분에만 치우치는 정치를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
내각제를 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이 택하고 있는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좋은 것인가.
이것 역시 5년마다 정치인의 이합집산을 가져올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현임 대통령을 평가할 기회를 국민들에게 주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단임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국민의 재평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소신껏 할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원리는 자비로운 독재자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평가와 선택에 기초하는 것이다.
국민의 평가가 없을 경우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진다.
그러기에 단임제 대통령책임제에서는 대통령이 자주 장관들만 갈아치울
뿐 장기적인 비전에 의한 일관성있는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게 된다.
대통령이 표방한 정책을 장관이 수행하다가 그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대통령은 장관만 갈아치우면 되는 것이 단임제의 문제점이다.
대통령책임제라기 보다는 장관책임제 혹은 대통령 무책임제라고나 할까.
대통령책임제를 채택한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왜 국회의원이 장관이 될수
있게 하였는지 잘 모르겠다.
내각제에 비해 행정부에 보다 큰 권력을 부여하는 대통령제에서는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을 충실히 해야 할 터인데 내각제와 같이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경우 행정부에 대한 감독과 견제의 임무는 소홀히 될 것이다.
이 제도는 장관이 해임돼도 국회로 돌아 갈수 있어 좋고, 또 대통령은
국회의원 중에서 장관을 임명 또는 해임할 권리를 가짐으로써 국회에
영향력을 가져서 좋기 때문에 정치인들끼리 서로 좋아 만들어낸 얼치기
제도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기여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면 대통령제는 진정한
의미의 대통령 책임제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정책의 방향을 정해 그에 맞는 사람을 장관으로 선택하고, 과오가
없는 한 장관의 수명이 대통령과 같이 가며 또 대통령은 중임이 가능하여
(현 대통령에 대한 소급적용 배제) 국민들에게 다시 평가를 받아 재집권을
추구할수 있게 해야 한다.
오랜 독재의 횡포속에서 축적된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5년 단임대통령제를
만들어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독재의 부산물을 내던져야 한다.
합리성에 근거한 민주주의 원리를 복원하여야 한다.
정치인을 위한 정치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경제생활을 위한 정치제도가
되도록 우리의 헌법구조를 개조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5일자).
국회의원을 뽑는가, 왜 국민들이 값비싼 세금을 내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극진히 모셔야 하는가, 그들이 인격적으로 뛰어나거나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일까.
최근 경제학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신정치경제학(공공선택이론)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그들에게 월급은 물론 명예와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국민들의 삶을 보다 좋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그러면 정치는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어떻게 기여할수 있는가.
정치는 자유시장이 할수 없는 일들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다리와 도로 혹은 법질서와 같은 공공재를 공급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에서는 정치의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데도 다리가
무너지고 도로가 꽉꽉 막히며 법질서가 난장판이다.
정치가 과연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최근 개헌논의가 제법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정치제도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제도를 거론하면서 정치의 존재이유인 국민들의 경제적
삶에 대한 논의는 없다는 것이다.
개헌논의의 관점이 오로지 누가 권력을 잡느냐에 놓여있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국민들은 자연인 누구가 권력을 잡든 관심이 없다.
누구든지 국민의 삶에 번영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정치제도를 선택할 것인가는 어떤 제도가 국민들의 경제적
삶을 정치에 잘 반영할 수있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개헌에 대한 논의는 정치인이나 정치학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제인이나 경제학자의 참여도 필요로 한다.
정치적 권력의 결정에 운명을 내맡기던 경제인들이 정치권의 눈치만 볼 뿐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고속도로가 막혀 물류비용이 엄청나도 정치권에 한마디
소리도 못하는 시대는 지나가야 한다.
정치는 외부에서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그 주어진 정치제도 안에서
경제적 최적만을 찾겠다는 한갓 경제기술인으로의 경제학자의 역할은 재고
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정치제도가 한국 국민의 경제생활에 바람직한가.
우선 최근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는 내각제를 보기로 하자.
내각제가 국민들의 장기적인 경제생활에 도움을 줄수 있기 위해서는 이념에
근거한 양당정치제도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당의 지속적 이합집산에 의해 정책의 일관성이 결여될
뿐 아니라 장기적 국가경제방향이 설정되지 못할 것이다.
이념이나 정강정책으로 묶여져 있기 보다는 인맥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내각제는 국민의 경제생활은 무시된 채 정치인의
권력배분에만 치우치는 정치를 만들어낼 우려가 있다.
내각제를 하기 위해서는 이 점이 극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이 택하고 있는 5년 단임의 대통령제는 좋은 것인가.
이것 역시 5년마다 정치인의 이합집산을 가져올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현임 대통령을 평가할 기회를 국민들에게 주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단임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람은 국민의 재평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래서 소신껏 할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 원리는 자비로운 독재자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평가와 선택에 기초하는 것이다.
국민의 평가가 없을 경우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진다.
그러기에 단임제 대통령책임제에서는 대통령이 자주 장관들만 갈아치울
뿐 장기적인 비전에 의한 일관성있는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게 된다.
대통령이 표방한 정책을 장관이 수행하다가 그 정책이 효과를 내지 못할
경우 대통령은 장관만 갈아치우면 되는 것이 단임제의 문제점이다.
대통령책임제라기 보다는 장관책임제 혹은 대통령 무책임제라고나 할까.
대통령책임제를 채택한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왜 국회의원이 장관이 될수
있게 하였는지 잘 모르겠다.
내각제에 비해 행정부에 보다 큰 권력을 부여하는 대통령제에서는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일을 충실히 해야 할 터인데 내각제와 같이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할 경우 행정부에 대한 감독과 견제의 임무는 소홀히 될 것이다.
이 제도는 장관이 해임돼도 국회로 돌아 갈수 있어 좋고, 또 대통령은
국회의원 중에서 장관을 임명 또는 해임할 권리를 가짐으로써 국회에
영향력을 가져서 좋기 때문에 정치인들끼리 서로 좋아 만들어낸 얼치기
제도가 아닌지 의심이 간다.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기여하는 것이 정치의 목적이라면 대통령제는 진정한
의미의 대통령 책임제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정책의 방향을 정해 그에 맞는 사람을 장관으로 선택하고, 과오가
없는 한 장관의 수명이 대통령과 같이 가며 또 대통령은 중임이 가능하여
(현 대통령에 대한 소급적용 배제) 국민들에게 다시 평가를 받아 재집권을
추구할수 있게 해야 한다.
오랜 독재의 횡포속에서 축적된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5년 단임대통령제를
만들어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독재의 부산물을 내던져야 한다.
합리성에 근거한 민주주의 원리를 복원하여야 한다.
정치인을 위한 정치제도가 아니라 국민의 경제생활을 위한 정치제도가
되도록 우리의 헌법구조를 개조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