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고려대 교수 / 경영학>

성년식을 치렀다고 해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성년식을 치르지 않았다고 해서 어른이 아이가 되는 것도 아니다.

성년식이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격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인정하는 절차인 것처럼 OECD가입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서 인정을 받고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OECD이사회가 최근 한국을 회원국으로 가입시킴에 따라 우리나라의
국회비준절차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도 OECD가입시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게 사실이다.

OECD가입 자체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없으며, 가입은 우리의 선택일 뿐 어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장 적절한 가입시기는 우리가 얻는 것이 가장 크고 확실하며
잃는 것이 가장 적은 시점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 들인다고 해도 우리가
얻는 것은 추상적이고 불확실하며, 구태여 OECD에 가입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에 잃는 것은 구체적이고 확정적이며 당장에 닥칠 문제들이며, 시간을
두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우리경제가 완전한 시장개방을 수용하고 소화해낼 만한 구조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따라서 선진국의 흉내를 낼려고 가입을 서둘러서 국가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OECD가입으로 인하여 가장 큰 개방압력을 받게 될 우리나라
금융산업의 낙후성에 비추어볼때 이러한 가입연기의 목소리는 단순한
우려가 아닌 경제논리에 근거한 정당한 주장이다.

정부는 OECD가입을 계기로 우리경제를 개방과 자유경쟁체제로 개혁할
수 있게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스스로 개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OECD의 압력을 받아서
하겠다는 것은 곶감을 주면 될 아이에게 호랑이가 온다고 겁을 주어서
울음을 그치게 하는 우화를 생각케 하는 논리이다.

우리정부가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다고 자인하고 남에게 강요받고
싶어하는 꼴이다.

우리경제는 시장경제를 표방하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아직도 계획경제의
제도와 관행을 가지고 있다.

목욕탕 요금에서부터 주식가격까지 정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통제경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가장 많은 개혁이 필요한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은 정부의 규제와
통제력이 가장 많이 미치는 분야이며 따라서 금융산업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

OECD가입은 무엇보다도 국경없는 자본이동의 자유화를 의미한다.

OECD가입에 따라 우리 기업들은 외국에서 국내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저렴한 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돼 금융비용을 절감하고 우리상품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또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주식시장에 제한없이 투자함으로써 주식수요의
기반 확대하는 주가상승의 호재를 낳아 일반투자자들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일 뿐이다.

금리차익을 목적으로 하는 해외자금의 유입을 통화증발과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국내금리의 상승으로 연결되는 정반대의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 우리경제는 인플레와 고금리의 악순환에 빠질 뿐 아니라
경제운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잃게 될 위험이 있다.

더구나 국민총생산의 절반수준에 불과한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규모는
국제적인 유동자금을 흡수할만한 여력이 없으며 그러한 자금이동을
규제할 제도적인 장치도 갖고 있지 않다.

더구나 채권시장은 시장기능도 제대로 정착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국제핫머니의 이동으로 인한 투자위험이 증폭될 경우에는
일시적인 증권시장의 실패로 연결될 우려도 있다.

OECD의 가입에 따른 금융개방이 어떠한 문제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정부의 경제관리들은 더 잘 알고 있다.

정부는 OECD가입자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금융산업과 경제구조의
제도적인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

통화신용정책을 간접규제체제로 전환하고 금융규제를 과감하게 완화해야
한다.

금융기관의 감독을 투자자보호를 위한 투자자산의 위험관리체제로
전환하고, 직접규제보다는 공시제도등을 통한 시장감시기능을 높혀야한다.

금융기관의 감독을 투자자보호를 위한 투자자산의 위험관리체제로
전환하고, 직접규제보다는 공시제도 등을 통한 시장감시기능을 높혀야한다.

금융기관을 대형화하고 전문화하며 자율경영을 보장하여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중소기업들에게 실질적인 신용대출이 가능해지도록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능력을 전문화해야 한다.

그리고 금융실명제를 실질적으로 정착시켜서 지하경제를 줄이고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증권시장에서는 작전거래와 내부자거래를 강력하게 규제하여 공정거래를
정착키시고 공시제도를 강화, 시장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증권기관들은 위험관리체제를 선진화하고, 정보생산 능력을 갖춘 전문성을
가져야한다.

채권시장을 활성화하여 금리의 시장기능을 살려야 하고, 특히 기업들이
안정적인 장기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장기채권시장을 서둘러 개발하여야
한다.

특히 무엇보다도 우리경제의 경쟁력을 높히기 위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개혁에 힘써야 한다.

선진국의 두배가 넘는 7%의 성장률에서도 불황이라고 아우성치는 고도성장
중독병, 만성적인 물가상승병과 임금상승병, 세계최고 수준의저축률을
기록하면서 과소비를 하는 기형적인 소비병, 그리고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한다고 믿는 재벌들의 만능병을 치유하지 않고서 인위적으로 금리를 내리고
일시적으로 임금을 동결하는 식의 구태의연한 발상을 가지고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선전국이 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OECD 가입 자체보다는
스스로 경제구조를 개혁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