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46세라는 젊은 나이로 미 제42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클린턴이
이번 재선으로 민주당 대통령으로는 4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이후 처음
재선에 성공한 기록을 남기게 됐다.

생후 9개월만에 아버지 윌리엄 블라이드 3세가 교통사고로 숨져 난폭한
주정뱅이 의붓아버지 로저 클린턴 밑에서 자란 그는 불운한 어린 시절을
인내와 노력으로 극복한 의지의 사나이다.

그가 63년 고교시절 아칸소주 대표로 뽑혀 워싱턴에서 리더십 워크숍을
가졌을때 백악관을 단체로 방문, 로즈가든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과 악수
하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대통령이 되기 전 그의 생애에서 가장 큰 사건은 예일대 시절 부인 힐러리
로드햄 여사를 만난 것.

힐러리는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남편보다 더 능동적으로 움직여온
의지의 여성이었으며 그만큼 말도 많았다.

빌-힐러리 부부에 관한 문제의 책 "권력의 동반자들"의 저자 로저 모리스는
이들을 단순한 부부가 아닌 권력의 동반자로 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정치활동이나 정책에 대한 힐러리의 많은 간여가 힐러리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힐러리는 단순한 퍼스트 래이디가 아닌 독자적으로 하나의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클린턴은 화려한 학력과 당찬 야심에도 불구하고 성장배경 때문인지
성격적인 문제와 월남전때 병역의무를 기피했다는 약점 때문에 항상 상대방
에게 공격의 빌미를 주어야 했다.

그는 첫 임기 내내 화이트워터에서 트래블게이트에 이르기까지 금전과
여자관계, 힐러리의 지나친 정책개입에 대한 비난 등에 시달려야 했으며
재선운동 막바지에는 아시아계 외국인 정치헌금을 불법적으로 받았다고 해서
곤욕을 치뤄야 했다.

그의 재선에 결정적 영향을 준 것은 공화당 보브 돌 후보에 비해 워낙
젊고 첫 임기중에 경제가 살아났다는 점이 꼽히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