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책] 밴 애거 저서 '비판이론으로서의 문화연구'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문환 < 한국문화정책개발원장 >
뉴욕주립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벤 에거(Ben Agger) 교수의 "비판
이론으로서의 문화연구"를 읽으면서 내내 눈사람 만들기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써 속내를 감추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생각을 꿰어 논증
하고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실천적.정치적 비판이다.
이 중심축을 따라 저자는 문화(연구)의 개념과 역사를 일별한다.
다음으로 현대사회의 주요한 문화이론인 맑스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버밍엄학파, 탈구조주의와 탈현대주의, 그리고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검토
한 후 급진적 문화연구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단순히 소개하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저자는 문화이론을 교과서처럼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아니
책의 전체에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놓고 있다.
따라서 입버릇처럼 "문화가 중요하다" 또는 "앞으로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면 적지 않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한 그냥 책을 읽었다는 충족감에만 빠진다면, 그것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식의 증대보다는 구체적 실천과 대안을, 일상생활에서 문화(연구)
영역과 정치영역의 교차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실천과 대안의 지침서로만 인식하는 것 역시 절적하지
못하다.
비판적으로 쓴 만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일반적 의미에서 그렇고,
우리는 서구사회와 다른 역사의 긍정적.부정적 유산을 지니고 있다는 역사적
의미에서 그렇다.
문화가 일반인과 연구자 모두에게 주된 화두가 된 지금, 섣부른 포스트주의
와 경직된 과거의 패러다임을 동시에 경계하면서 급진적 문화연구의 필요성
을 주장하는 저자의 눈사람이 곧바로 녹아 없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는 순전히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8일자).
뉴욕주립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벤 에거(Ben Agger) 교수의 "비판
이론으로서의 문화연구"를 읽으면서 내내 눈사람 만들기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써 속내를 감추지 않으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생각을 꿰어 논증
하고 확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실천적.정치적 비판이다.
이 중심축을 따라 저자는 문화(연구)의 개념과 역사를 일별한다.
다음으로 현대사회의 주요한 문화이론인 맑스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버밍엄학파, 탈구조주의와 탈현대주의, 그리고 페미니즘을 비판적으로 검토
한 후 급진적 문화연구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강조한다.
문화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이 수록되어 있다고 해서, 단순히 소개하고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저자는 문화이론을 교과서처럼 정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아니
책의 전체에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놓고 있다.
따라서 입버릇처럼 "문화가 중요하다" 또는 "앞으로는 문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면 적지 않게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한 그냥 책을 읽었다는 충족감에만 빠진다면, 그것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저자는 지식의 증대보다는 구체적 실천과 대안을, 일상생활에서 문화(연구)
영역과 정치영역의 교차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실천과 대안의 지침서로만 인식하는 것 역시 절적하지
못하다.
비판적으로 쓴 만큼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일반적 의미에서 그렇고,
우리는 서구사회와 다른 역사의 긍정적.부정적 유산을 지니고 있다는 역사적
의미에서 그렇다.
문화가 일반인과 연구자 모두에게 주된 화두가 된 지금, 섣부른 포스트주의
와 경직된 과거의 패러다임을 동시에 경계하면서 급진적 문화연구의 필요성
을 주장하는 저자의 눈사람이 곧바로 녹아 없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이정표가
될지는 순전히 우리들에게 달려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