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570) 제12부 낙엽 진 뜨락에 석양빛 비끼고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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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옥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자견의 손을 꼭 붙잡고 마지막
당부를 하였다.
"자견아, 내 몸은 한번도 남자에게 더럽혀진 적이 없는 처녀의 몸으로
깨끗하니 내가 죽거든 외가의 어른들에게 잘 말씀드려 내 유해를
고향땅으로 보내어 아버지 옆에 묻어 달라고 하려무나"
그 말을 듣자 자견은 더욱 크게 흐느꼈다.
자견의 손을 잡고 있는 대옥의 손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다시
호흡이 가빠졌다.
자견은 대옥의 임종이 정말 가까워온 것을 느끼고 도향촌으로 간 이환을
부르러 견습시녀 하나를 보내었다.
그리고 자견은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이미 지어놓은
수의를 가져오고 수의를 입히기 전에 대옥의 몸을 씻길 물을 준비하였다.
사람의 혼이 몸에서 떠나기 전에 수의를 입혀주어야 황천길을 평안히
들 수 있다는 항간의 미신을 자견도 믿고 있는 편이었다.
사람의 혼이 몸에서 떠나고 나서 수의를 입히면 그 사이에 혼은
이승에서 입고 있던 옷으로 인하여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잠깐 동안이나마 혼돈에 빠질 것이 아닌가.
대옥은 의식이 꺼져가는 한편으로,스무 살도 되지 않는 짧은 생애를
살아온 추억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생생하게 떠올라 어른거렸다.
양자강 하류 동해 근방 유양 땅에서 순염대사로 소금 전매를 담당하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끝도 없이 펼쳐진 허연 소금밭을 둘러보며 구경하던
일이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를 떠나 영국부 외가집으로 오기
위해 배를 타고 수레를 타고 생전 처음 장안 거리로 들어서던 일이며,
영국부에서 운명적으로 보옥을 만나던 일이며, 보옥과 함께 꽃무덤을
만들어주던 일이며, 꽃들이 지는 모습이 안쓰러워 "장화음"이라는 시를
지으며 슬피 울던 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뇌리에 펼쳐졌다.
그 하나하나의 일들이 한결같이 소중하고 애틋하게 여겨졌지만 일단
숨을 거두고 나면 그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승으로 넘어가도 이승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인가.
저승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이승의 일들은 일제히 황천이라는 망각의
강에 빠져 흔적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정말 저승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인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옥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은 이제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옥의 귓가에 대옥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이승에서인 듯 저승에서인
듯 어지럽게 들려왔지만 대옥은 도저히 눈을 떠볼 수가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
당부를 하였다.
"자견아, 내 몸은 한번도 남자에게 더럽혀진 적이 없는 처녀의 몸으로
깨끗하니 내가 죽거든 외가의 어른들에게 잘 말씀드려 내 유해를
고향땅으로 보내어 아버지 옆에 묻어 달라고 하려무나"
그 말을 듣자 자견은 더욱 크게 흐느꼈다.
자견의 손을 잡고 있는 대옥의 손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다시
호흡이 가빠졌다.
자견은 대옥의 임종이 정말 가까워온 것을 느끼고 도향촌으로 간 이환을
부르러 견습시녀 하나를 보내었다.
그리고 자견은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어 이미 지어놓은
수의를 가져오고 수의를 입히기 전에 대옥의 몸을 씻길 물을 준비하였다.
사람의 혼이 몸에서 떠나기 전에 수의를 입혀주어야 황천길을 평안히
들 수 있다는 항간의 미신을 자견도 믿고 있는 편이었다.
사람의 혼이 몸에서 떠나고 나서 수의를 입히면 그 사이에 혼은
이승에서 입고 있던 옷으로 인하여 이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잠깐 동안이나마 혼돈에 빠질 것이 아닌가.
대옥은 의식이 꺼져가는 한편으로,스무 살도 되지 않는 짧은 생애를
살아온 추억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생생하게 떠올라 어른거렸다.
양자강 하류 동해 근방 유양 땅에서 순염대사로 소금 전매를 담당하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끝도 없이 펼쳐진 허연 소금밭을 둘러보며 구경하던
일이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아버지를 떠나 영국부 외가집으로 오기
위해 배를 타고 수레를 타고 생전 처음 장안 거리로 들어서던 일이며,
영국부에서 운명적으로 보옥을 만나던 일이며, 보옥과 함께 꽃무덤을
만들어주던 일이며, 꽃들이 지는 모습이 안쓰러워 "장화음"이라는 시를
지으며 슬피 울던 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뇌리에 펼쳐졌다.
그 하나하나의 일들이 한결같이 소중하고 애틋하게 여겨졌지만 일단
숨을 거두고 나면 그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승으로 넘어가도 이승의 일들을 기억할 수 있는 것인가.
저승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 이승의 일들은 일제히 황천이라는 망각의
강에 빠져 흔적도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정말 저승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인가.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옥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은 이제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옥의 귓가에 대옥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이승에서인 듯 저승에서인
듯 어지럽게 들려왔지만 대옥은 도저히 눈을 떠볼 수가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