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 밑에서 물결이 솟구치듯 21세기를 10년앞둔 세계는 냉전 와해의 엄청난
변화를 잉태했고 아직도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세계화 기치를 내건 한국이 이런 변화의 물결을 얼만큼 슬기롭게 헤쳐나가
느냐의 성패는 더욱 유일 분단국으로서의 국운을 크게 좌우할 것이다.

지난주 한반도 주변에선 큰 고비의 변화가 있었다.

미국과 일본의 대통령-내각수반 선거가 치러졌고, 러시아에선 대통령이
생명을 건 심장수술을 받았다.

당분간 조용하나 중국에서도 등소평 이후를 향한 진통이 계속중이다.

그런가 하면 휴전선 넘어 북한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무리를
계속해 반도안뿐 아니라 아시아와 태평양을 긴장시키고 있다.

한시도 마음을 놓기힘든 이런 주변상황에서 나라안은 안대로 하루의
영일도 없이 당장의 생존경쟁에 근시안처럼 아귀다툼이다.

잘난 사람들은 대권경쟁, 공돈 챙기기로 망신들을 하고 게다가 무장공비
후유증으로 들끓는다.

서민은 물가고속에 자녀 과외 시키랴, 경조사에 체면치레 하랴, 분위기에
들떠 과당지출 하랴, 영일이 없긴 상하가 마찬가지다.

다행히 주변국 정세변화는 안도할수 있는 방향이다.

미-일 정상은 한국과 오래 호흡을 같이 해온 주자들이고 옐친은 회복이
예상 외로 빠르다.

만일 그 반대방향이어서, 거기 북의 편승이 있다고 가상하면 의외 방향으로
의 사태전개가 없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러나 2기 들어선 클린턴, 하시모토 개인의 입장변화도 그러려니와 더욱
새 진용의 성격을 볼때 돌변가능성도 배제할순 없다.

향후 한-미, 한-일 관계는 획일적이 아니라 문제 성격에 따라 판이한 진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첫째 안보면에선 미-일 양측이 종래 한국과의 공동보조를 적어도 약화시키진
않으리란 기대를 걸만 하다.

미 행정부론 북한의 재선방해 위험성이 사라졌고, 하시모토 보수 내각은
과거 시정엔 불화소지가 높은 반면 대북 자세는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
내다보인다.

둘째 통상면에서 미-일은 국익우선에 박차를 가할 것이 분명하다.

무역적자로 혼이 난 클린턴의 통상압력 강화는 대단할 것이다.

일본은 중-러와의 조어도 북방4도 분쟁 선상에서 애써 독도문제만 분리
시키는데 인색할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문제에서나 합리성 면으로 한국측이 꿀릴 것은 없다.

우선 미국의 대한 통상압력은 억지이다.

80년대 중반 반짝한 것 말고, 그것도 갈수록 대미 적자가 더 벌어지는
현실 앞에 어째서 문을 더 열어야 할 쪽이 한국인가.

독도 포함, 일본의 대한 고자세가 따지고 보면 그들의 양심에도 반한다.

다만 혐한으로 나타나듯 양국민간 감정문제다.

몇달전 요미우리 조사에서 보듯, 사사건건 일본에 반대하는 나라는 중국도
동남아 어디도 아니고 한국이라는 사실, 그것도 과거사 사과만 반복강요하는
한국이 싫다는 논리다.

국제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힘 아니면 호혜관계다.

정세변화에 밝고 교섭력이 강해야 함은 기초다.

세계화를 외치며 주변동향에 오불관언이면 낙제 세계인이다.

우선 이달 필리핀에서 한-미-일 정상들이 방향부터 잘 잡기 바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