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은 최근 상공부차관보와 공진청장을 지낸 신국환씨를 삼성물산
고문으로 영입했다.

쌍용그룹도 관가에서 에너지전문가로 뼈가 굵은 윤수철씨를 정유고문으로
초빙했다.

LG그룹의 경우 지난 1일 공정거래위원회 정책국장을 지낸 정재호씨를
그룹 고문으로 영입했다.

고문-.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말하는 직책''이다.

실무의 결재선에서는 빠져 있지만 사업방향을 조언해주는 이른바
''어드바이저(Adviser)''.

그만큼 오랜 기간의 경험을 무기로 하고 있는 사람들인 셈이다.

그렇다고 고문의 역할이 사전적 의미처럼 반드시 정해진 것은 아니다.

기업에 따라, 사람에 따라, 또 그들 자신의 전직에 따라 대우와 역할이
판이하다.

경우에 따라선 최고경영자에 못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파워를 행사하는
실세파가 있는가 하면 퇴임을 눈앞에 두고 잠시동안 예우를 받는 힘없는(?)
고문도 없지는 않다.

물론 대다수의 고문은 경험 많은 전문가로서 경영전반에 대한 조언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편이지만..

기업의 실세파 고문을 한번 꼽아보자.

대표적인 인물로 우선 동아그룹의 박봉환고문을 들 수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그는 80년대 동자부장관을 지낸뒤 증권감독원장
보험감독원장을 두루 거친 금융통이다.

동아그룹 내에서 그의 역할은 금융분야 총괄지휘.

동아증권 동아생명 등 금융관련 계열사들이 그의 영향력안에 들어있다.

금융에 밝은 것뿐만 아니라 인맥이 두텁고 박학다식하다는 것도 그의
장점이다.

현대그룹의 설영흥고문도 그룹내 대표적인 실세고문이다.

화교출신인 그는 부산 화교고등학교와 대만 성공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장점은 대만은 물론 중국내 인맥을 꿰뚫고 있다는 것.

중국시장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 현대그룹으로서는 보물단지와 같은
인물이다.

현대정공 소속으로 있으면서도 그룹의 모든 중국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있다.

회장단의 중국출장에는 반드시 동행해 중국비즈니스를 조언하고 있다.

코오롱그룹의 김수학고문은 종합연수원장이라는 실무 타이틀을 달고 있다.

올해 69세의 김고문은 소학교 출신으로 국세청장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충남도지사 경북도지사 대구시장도 그의 전력이다.

그는 오랜 공무원 생활에서 "청백리의 표상"이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청렴결백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런 평가를 배경으로 지금은 종합연수원에서 회초리를 들고 "코오롱인"
육성을 책임지고 있다.

쌍용양회의 이동백고문은 "시멘트 엔지니어의 대부"다.

쌍용양회 부사장을 거친 그는 아직도 엔지니어링의 상당부분에 관여하고
있을뿐 아니라 그룹 기술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라그룹의 김재휘고문도 건설업계의 높은 지명도가 반영돼 영입된
케이스.

건설등 그룹의 신규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전반적인 경영자문도 하고 있다.

고문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을 출신별로 보면 그래도 해당기업 내부
출신자가 많다.

그러나 이들중 상당수는 퇴직전의 예우직에 남아있는 경우다.

자연 실세파는 외부 영입 케이스에서 많은 편이다.

외부 영입의 경우에도 전직에 따라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가 전직고관 출신.이 부분에서는 금호그룹이 가장 두드러진다.

한은총재와 동자부장관을 거친 최창락고문을 비롯해 국무총리였던
황인성고문,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을 지낸 이승윤고문, 전직
교통부장관인 임인택고문 등 쟁쟁한 전직 장관출신들로 고문진을 짜놓고
있다.

금호그룹은 이들의 고문진 배치에 대해 "박성용그룹명예회장과 막역한
사이로 이들의 경륜을 그룹 경영전반에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최고문은 박명예회장과 중앙고, 서울대 문리대 동기동창으로
"죽마고우"다.

이고문도 박명예회장이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던 시절 서강대
상경대학장을 지낸 연이 있다.

황고문 역시 88년부터 92년까지 아시아나항공초대회장을 맡은 경력이
있다.

삼성그룹도 공진청장 출신인 신국환씨를 고문으로 영입한 외에 관세청장을
지낸 김경태씨를 삼성자동차고문으로, 특허청 항고심판소장을 지낸
이상열씨를 삼성경제연구소고문으로 각각 영입했다.

한진그룹은 교통부장관을 지낸 로건일씨를 고문으로 영입해 육운
분야의 자문을 맡겼다.

LG그룹의 경우 공정거래위 정책국장이던 정재호씨를 최근 그룹 고문으로
초빙, 눈길을 끌고 있다.

군출신 인사도 많다.

기아그룹의 경우 해군중장출신으로 한국송유관 대표이사를 거친
정용근씨를 고문으로 영입한데 이어 올해는 육군 1군 부사령관 출신의
정수열씨를 아시아자동차 고문으로 초빙했다.

기업들이 고위 관리 출신을 영입하는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수많은 규제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대정부 업무를 어떻게
쉽게 풀어가느냐라는 것.

전직 고위 관료가 고문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해당 기관의 로비가 수월해질
수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항공업체들이 교통부장관 출신을,군납업체들이 군출신을 고문으로
영입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연관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과거의 "은혜"에 대한 "보답"의 의미도 있을 수 있다는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두번째는 기술적 자문을 위해 영입된 인물들.

특이한 사례이긴 하지만 대표적인 인물이 삼성그룹의 경비전문업체
에스원의 최중락고문을 들수 있다.

최고문은 치안본부 총경 출신으로 과거 MBC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이었을 정도로 수사 경력 40년의 베테랑 수사관 출신이다.

그는 은퇴후인 93년1월 에스원에 고문으로 들어와 현재 에스원의 업무에
가장 많은 조언을 해주는 전문가로 남아있다.

현대건설의 이종필고문도 76세의 고령이지만 원예 조경 등에 아직도
적극적인 조언을 해주고 있을 정도다.

한진그룹의 맹일영고문(경영일반), LG그룹의 조창화고문(방송미디어),
한라그룹의 호기돈고문(건설), 쌍용그룹의 정춘택고문(경제연구자문) 등도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다.

기술고문들이 늘어나면서 최근 들어 고문들의 연령층도 낮아지고
있다.

현대그룹 같은 곳은 부장급 고문도 들어 있다.

서울 형사지법과 민사지법 판사를 거친 한진그룹의 이태희고문, 미국
변호사 출신의 LG그룹 김동인고문, 역시 미국 변호사 출신인 선경그룹
최혁배고문 등은 대표적인 법률 고문이다.

세번째는 예우 차원이다.

물론 회사에 공이 많아 예우하는 경우도 있지만 포철의 회장을 지낸
황경로고문이나,정몽준의원의 장인인 현대중공업의 김동조고문(전
외무부장관)등이 그런 경우다.

고문중의 고문이라는 막강한 권한의 소유자들도 있다.

실제 오너가 이런저런 이유로 고문 타이틀만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경우다.

현대중공업과 현대경제사회연구원의 고문을 맡고 있는 정몽준의원과
고 이병철삼성그룹회장의 장녀인 한솔그룹의 이인희고문이 대표적인
케이스.

이들은 실제 오너이지만 정고문은 국회의원 국제축구위원회부위원장
등의 바쁜 대외업무를 이유로,이고문은 전면에 나서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각각 고문이라는 간판만을 내걸고 있다.

물론 롯데그룹이나 대우그룹처럼 고문이 아예 없거나 있어도 몇몇
계열사에 소수의 기술고문만을 두고 있는 그룹도 많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계열사에 회장이나 부회장직을 늘려 놓아 고문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활동이 보다 전문화되면서 고문의 역할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수많은 임직원의 밤샘 고민보다 고문의 한마디로 난국을 타개하는
사례가 더욱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