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은 수많은 장타자 가운데서도 "아주 확실한" 장타자였다.

그는 내가 보기에 단골 골프장의 거의 전 홀에서 최장타 기록을 갖고
있었다.

어느날 R은 483m의 오르막 파5홀에서 투온을 시켰다.

나와 함께 라운드한 골퍼중 그 홀에서 투온에 성공한 골퍼는 그가
처음이었다.

사실 그는 투온이 아니라 그린을 1m가량 오버시켰다.

그러나 "백 핀"이었기 때문에 홀컵까지는 5m 정도에 불과, 이글도
노릴만 했다.

동반자들은 그의 쾌거에 "힘찬 박수"를 보냈다.

반면 그날의 동반자중 한명인 G는 서드샷이 그린을 크게 오버, 볼이
법면에 비스듬히 걸쳐 있었다.

경사면을 따라 "내리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볼과 그린사이에는 벙커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린 경사도 쭉 내리막. 거리는 10m쯤 됐으나 누가 보나 가장 고약한
라이였다.

그런데 G는 그 네번째샷을 그대로 홀인시켜 버디를 잡았다.

로브웨지로 내리친 볼은 벙커를 살짝 넘어 프린지에 떨어지더니
느릿 느릿 구르며 홀컵속으로 사라졌다.

G의 표현으로는 구력 8년만에 가장 인상깊은 버디.

이 하나의 샷으로 R의 "투온"은 급격히 변색됐다.

R은 "이글만이 G의 버디를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수 밖에.

당연히 그의 이글샷은 홀컵을 3m나 지났고 R은 그 버디퍼트마저 실패,
파에 그쳤다.

위와같은 상황은 별로 드문 게 아니다.

"10m가 300m를 얼마든지 KO시킬 수 있음"을 알면 당신도 승부사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