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상태에 빠진 증시를 살리기 위해 어쩌면 연기금이 동원될 모양이다.

재정경제원이 주식수요 확충방안의 하나로 연기금의 유가증권 투자비중을
높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친 경우 주식투자손실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는
방안을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국내 증시가 어려워진 까닭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경기침체, 경상수지적자확대, 높은 금리 등으로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데다 불성실공시, 내부자거래, 주가조작 등이 잦아 일반투자자들이
등을 돌린 탓이 크다.

게다가 증시의 큰손인 기관투자가들과 외국인투자자들도 각각 엄청난
평가손과 무거운 차입부담, 환율급등에 따른 환차손으로 주식매입 여력이
바닥난 상태이다.

그 결과 나타난 것이 주식의 수급불균형 또는 과잉공급이다.

실제로 주가가 오를만 하면 기업공개나 유무상증자, 특히 금융기관의
대규모 증자가 있었고 한국통신의 주식매각 등이 시도돼 주가를
끌어내렸다.

주가하락및 한통주 매각좌절로 사회간접자본확충에 필요한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추경예산편성이 요구되는 등 정부입장도 난처해졌다.

특히 내년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증시침체를 모른체 할 수 없는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라고
볼수있다.

지난해말 현재 우리나라 3대 연금인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의
총자산 24조원중 주식에 투자된 규모는 1조3,000억원으로 5.4%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미국 영국 일본 등은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80%까지로
우리보다 주식투자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따라서 국내 주요 연기금의 유가증권 투자확대시도는 채권유통수익률을
하향안정시키는 동시에 주가하락도 진정시키자는 다목적 카드인 셈이다.

일부 우량주를 중심으로 장기투자를 하면 상당히 높은 투자수익률을
올릴수 있다.

또한 OECD가입에 따른 금융시장 개방확대를 앞두고 채권과 주식을
포함한 유가증권투자를 늘려 증시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다만 걱정되는 점은 선진국 증시와는 달리 국내 증시가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선 배당이 거의 무시할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장기안정적인
주식수요기반이 없으며 각종 비리와 탈법행위로 증시에 대한 불신감이
높은 실정이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투자자문회사의 일임매매가 허용되는데 이를 통한
비리발생 가능성도 적지 않다.

만일 증시부양을 위해 연기금을 동원했다가 대규모 투자손실이 발생할
경우 연기금부실로 인한 경제 사회적 충격은 물론이고 과거 12.12
증시부양조치로 투신사경영이 어려워져 증시불안을 부채질 한 것과 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연기금의 주식투자 활성화조치에 앞서 증시에 만연돼
있는 비리와 불공정거래를 근절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싯가배당제도입
등을 통해 배당목적의 장기안정적인 주식투자수요를 확충해야 할것이다.

침체의 늪에 빠진 증시부양도 필요하지만 이제 겨우 걸음마단계인
국민복지기반을 뒤흔드는 일이 없도록 정책당국은 신중을 기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