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잠결에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창문에서는 희붐한 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어디에 누워있는 거지? 보옥은 부스스 상체를 일으키며 일어나
앉아 주이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바로 옆에 어느 여자가 속옷 차림으로 돌아누워 자고있는 것이
아닌가.

저 여자가 누구지? 보옥이 머리를 흔들어 기억을 더듬어보려 하였다.

아 내가 대옥 누이랑 혼인을 하였지.

신부의 몸속으로 들어가던 느낌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남자구실을 제대로 못하던 몸이 차츰 힘을 얻어 절정감으로
오르던 기억도 새삼스러웠다.

그런데 대옥의 몸이 별로 통통하지않은줄 알았는데 막상 안아보니
살이 탐스럽게 올라있지 않았던가.

그래서 보옥 자기가 권한 연와탕을 대옥이 꾸준히 먹어 몸이 좋아졌나
보다 생각하기도 했다.

보옥은 그 토실토실한 대옥의 몸을 다시 안아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신부쪽으로 손을 뻗었다.

"대옥 누이, 이쪽으로 돌아누워 봐"

그러면서 손으로 어깨를 짚어 신부의 몸을 자기쪽으로 돌렸다.

신부는 잠이 깊이 든채로 보옥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보옥이 치렁한 머리카락속에 묻혀 있는 보얀 얼굴을 내려다보는 순간,
"아" 하고 외마디 소리를 내었다.

그 얼굴은 대옥이 아니라 보채였다.

아니 이럴수가 보옥은 귀신에라도 홀린듯 다시 정신이 멍해졌다.

보채가 기척을 느끼고 두눈을 뜨고는 보옥을 올려다 보았다.

"외 이러고 있어요?"

보채가 보옥이 혹시 자기가 대옥이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게 아닌가
하고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보옥은 보채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안들었는지 아무 대꾸도 없이
초점잃은 눈을 허공에 두고 중얼거렸다.

"내가 누구랑 혼인을 한거지?"

보채는 어떻게 대답하는것이 지혜로운가 생각하느라고 얼른 대답을
하지못했다.

"난 대옥이랑 한줄 알았는데"

보옥이 기가 찬지 벙긋이 헤픈 웃음을 흘리기까지 하였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보옥 도련님은 보채인 나와 결혼을 했어요"

보채가 반듯이 일어나 앉으며 똑똑하고 자신있는 어투로 대답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