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에는 괴로운 시뿐이런가/세삼 길에는 친한 벗이 드물구나/
한낮 창밖에 보슬비 내리나니/등불 앞의 (추풍유고음 세로소지음
창외삼야우 등전만리심)"

고운 최치원은 "가을밤 빗소리에 (추야우중)"라는 시에서 보듯이 신라
말기의 우뚝한 문장가였다.

그의 문장력이 얼마나 뛰어났던지 저승에 있는 귀신을 시로서 감동시켜
불러냈다는 설화까지 전해진다.

고려 초엽 박인량의 "수이전, 조선초기 성임의 "태평통대", 조선 선조초
권문해의 "대동운부군옥" 등에 실려 있는 "선녀홍대"라는 설화다.

최치원이 12세때 당나라에 건너가 18세에 과거에 급제한 뒤 표수현의
현위가 되었다.

그때 그는 그 고을의 남쪽에 있는 초현관에 가서 자주 놀았다.

예로부터 많은 명현들이 노는 곳이었다.

그 앞에는 쌍여분이라는 오래된 무덤이 있었다.

어느날 그곳에서 고운이 쌍여분을 주제로 시를 읊었거니 홀연히
한 시녀가 나타나 그 무덤의 주인공인 팔낭과 구낭이 그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가져다 주었다.

그 시를 읽고 감동한 그는 두 여인을 만나자는 시를 지어 보냈다.

얼마뒤 이상한 향기가 진동하면서 아름다운 그녀들이 나타났다.

그녀들은 고운에게 자신들의 사연을 들려 주었다.

율수현의 부자였던 장씨의 딸들로서 언니가 18세, 동생이 16세이던
해에 아버지가 언니는 소금장수, 동생은 차장수와 정혼을 하게 되자
번민하다가 마침내 죽게 되어 그곳에 함께 묻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을 품고 죽은 그 자매는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오랜동안 찾다가 그제야 고운같은 수재를 만나 회포를 풀게 되었다.

세 사람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시로 화답하면서 즐기다가 흥취가 절정에
이르자 인연을 맺는 자리를 갖게 된다.

새벽을 알리는 닭울음 소리가 나자 자매는 작별할 시간이 되었다면서
시를 지어 바치고 사라진다.

고운은 이튿날 지난 밤을 회상하면서 쌍여분에 이르러 장가를 지어
부른다.

"선녀홍대"는 그동안 고운이 지은 설화 또는 소설인 것으로만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중국 강소성 남경 남쪽의 고순현 고성진 장산촌 화산
기슭에서 쌍여분이 발견됨으로써 그것이 완전히 가공의 세계가 아님을
입증해 주었다.

당나라에 29세때까지 17년동안 머물면서 명문인 "토황소격"을 비롯
1만여수의 글을 지은 고운의 문재가 1,100여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빛을
드리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