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반세기만의 만남이라는 설레임을 가졌던 지난 10월 동경의
남북평화미술전에 출품된 북한작품은 대부분 산수화였고 나머지는
몇점의 화조화와 인물화 그리고 서양화의 풍경화였다.

그 작품들에서 옛그림을 대하는 듯한 친근감을 느꼈다.

50년의 간극으로 인한 이질감을 덜고 화해를 돕고자 하는 주최측
취지에 따라 북한의 사상적 작품들은 제외했기 때문이다.

김일성우상등 이데올로기가 배제된 낯익은 듯한 작품들을 보면서
우선 그들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안도감을 가졌다.

얼마간 형식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기저에 흐르는 민족정서의
원형은 남북이 같다는 점을 확인할수 있었기 때문이다.

금세기 급변했던 서구미술이나,다양한 외래양식의 주비판적 수용과
자유분방한 개성발휘로 혼란스럽기까지 한 우리미술에 비해 북한은
국제미술의 흐름에 무관하게 조선화의 전통을 중시했고 사실주의이념을
고수해왔다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다.

북한미술은 "주최미술로서 민족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인민적 혁명적 미술이며 현실반영의 사회주의적 진실성을 확고히
담보하는 회화형식"이라는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미술을 통해 노동의식 혁명사상을 고취하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과
북한주민의 요구와 취향에 맞게그려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즐길수 있게
한다는 사실주의이다.

또한 "조선화는 오랜 전통과 예술적특성을 지녀 북한대중이 가장사랑하는
미술형식이므로 조선화를 주도적 형식으로 하며 이를 토대로하여 다른미술도
발전시킨다"는 조선화 중심주의이다.

북의 전시작품중 조선화의 산수화는 묵색과 필선의 운용에 수준이 높고
북한 산수풍경화로서의 특성이 돋보였다.

한편 활짝 미소를 띈 장고치는 여성을 그린 조선화나 저녁놀이 물든
바다에 갈매기가 나는 서양화등은 일면 세속적 느낌을 주지만 북한주민을
즐겁헤 한다는 북한식의 사실주의미술이념에 충실한 그림이라고 할수 있다.

기량과 예술성이 높은 산수화들에 화제와 낙관을 펜글씨체로 휘갈겨
쓰듯이 해서 오히려 그림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서예나 문인화를
지배계급의 유희의 산물로 보고 아주 없앤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한미술인들이 이데올로기나 정치선전에서 벗어나 자유정신으로
창작할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