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갯밑 공사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의미는 부인이 잠자리에서 남편에게 원하는 것을 청한다는 뜻이다.

물론 베갯밑의 부인은 남편에 대해 특별한 파워를 갖는다는 전제아래
공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안경사협회가 이성호 전복지부장관의 부인 박성애씨에게 1억5천만원의
돈을 건넨 것은 베갯밑 공사를 꾀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사"는 안경테의 독점판매권을 갖기 위한 관련법 개정작업.

그러니까 안경사협회는 장관의 부인을 통해 법을 뜯어고치려고 "돈질"을
해댔던 것이다.

그때가 작년 10월.

박씨 남편이 "무소불위"의 장관직에 있을 때였다.

더 재미있는 것은 박씨가 안경사협회로부터 받은 돈을 다시 돌려줬다는
시기(올 2월)다.

공교롭게도 돈을받았을 때는 남편이 힘있는 자리에 있을때였고 돈을
돌려준 시기는 그자리에서 물러나 있을 때였다.

공사가 가능하리라고 보고 돈을 받았는데 그것이 그만 불가능하게 됐을때
그 돈을 돌려줬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자연히 이런 의문이 생긴다.

남편이 올 8월 또 복지부장관에 오를줄 알았다면 박씨가 돈을 돌려줬을까,
그리고 안경사협회는 과연 그 돈을 돌려 받았을까.

또 이런 생각도 든다.

장관은 과연 부인의 뇌물수수를 몰랐을까.

베갯밑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가 은밀함임에 틀림없다면 베갯밑에선
알고 베갯밑을 떠나면 잊어버린건 아닐까.

이렇게 보면 "이전장관 부부사건"은 "베갯밑 부패의 전형"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복지부 직원들이 허탈해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안경사협회가 복지부 공무원에게 돈을 건넸다는 언론보도가 있은 12일만
해도 그들은 장관부부로부터 뒤통수를 맞을 지는 꿈에도 몰랐을게다.

안경사협회가 회원사를 상대로 로비자금을 걷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돈을
돌려주도록 조치했던 그들이지만 장관부부의 베갯밑에서 썩은 물이 복지부
안으로 흘러드는 것은 모르고 엉뚱한 곳에 방파제를 쌓은 꼴이 됐다.

그래서 지금 복지부 직원들은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고 있을 지 모른다.

"문민정부 초기의 윗물맑기운동을 다시 펴야 한다"고.

조주현 < 사회1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