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산업부가 오는 15일 공업발전심의회를 열어 "현대그룹의 일관 제철소
사업"문제를 상정키로 해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현대가 제철사업계획서를 정식으로 제출하지도 않았는데 통산부가
이례적으로 이 문제를 공발심에 올리기로 해 "현대 제철소 불가"를 아예
사전에 못박으려 하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한승수경제부총리등 정부 고위관리들이 최근 잇달아 현대 제철소에
대한 불허방침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이런 관측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은 중대한 절차상 하자를 노출하고 있어 향후
심각한 후유증이 예상된다.

통산부는 이 공발심 소집을 위해 김세원위원장(서울대교수)등 위원들에게
13일 느닷없이 회의개최 사실을 통보했다.

회의 안건은 정부의 경쟁력 10% 올리기 운동과 현대 제철소 허용 문제.

정부가 이처럼 현대제철소 문제 논의를 위해 공발심을 개최키로 한 것을
놓고 일각에선 정책결정 절차가 뒤바뀌었다는 문제점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박재윤통산부장관은 "현대가 사업계획서를 내면 공발심을 열어
자문을 구한 뒤 정부방침을 결정하겠다"고 여러차례 강조했었다.

그러나 통산부 스스로 "현대가 사업계획서를 아직 제출하지 않았다"고
확인하면서도 서둘러 현대제철소 건을 공발심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사업계획서 제출-공발심 자문-정부방침 결정"을 거칠 것이라던 정책결정
수순이 "정부방침 정리-공발심 추인"의 형태로 역전됐다는 얘기다.

통산부는 이에대해 "군산과 하동등 지방에서 현대제철소 유치 경쟁이
가열돼 조기에 이 문제를 매듭지을 필요성때문에 공발심의 조기소집이
불가피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이미 현대제철소 불허 결정을 내리고 공발심이라는 자문
기구를 통해 형식적인 "추인"을 얻으려 했다는 "오해"는 씻기 어려울듯 싶다.

또 현대제철소 문제가 주무부처의 산업정책적 판단보다는 정치적 논리에
따라 좌우됐다는 지적도 나올 만 하다.

정부가 최근 공정거래법에 사업부제 신설을 통한 재벌그룹의 신규사업
진출을 규제하는 조항을 마련하려 했던 것이나 이석채경제수석등 청와대
관계자들이 비공식적으로 "현대제철소 불가" 입장을 밝혀 왔던 점을 감안
하면 그렇다.

이같은 우려는 공발심 자체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공업발전법 24조에 따라 구성된 공발심은 현재 총 27명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경제원 통산부 공정위등 정부부처 1급 6명과 정부출자및 투자
기관장등이 대거 참여해 관변 냄새를 물씬 풍긴다.

물론 민간위원중엔 학계와 언론계 인사도 있으나 정부측 위원들의 목소리에
맞서기는 무리라는 지적이 많다.

자칫 공발심이 정부의 "거수기"에 역할만 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만약 현대의 제철사업 불가가 공발심을 통해 공식화 될 경우 <>삼성그룹
승용차사업 허용과의 형평성 <>정부 불허방침의 법적근거 등이 논란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그룹은 물론 이에대해 공식적으론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부의 "제철소 불허 예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일부에선 "부당한 정책결정 절차"를 문제 삼아야 한다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쨌든 현대 제철소 문제를 다룰 이번 공발심은 중요 산업정책 사안이
정치논리와 엉뚱한 절차에 의해 억지 결정된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