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행정행위가 모든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정책이라는게 이해관계 조정행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를 입는 쪽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책은 그 결정절차와 내용이 투명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 그렇게 했는지, 어떤 근거가 있는지를 명쾌하게 밝혀야한다는 얘기다.

현대그룹의 일관제철소 추진과 관련, 최근 정부에서 보여준 일련의 행태를
보면 정책으 필요충분조건인 "투명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공업발전심의회에 안건 상정을 결정하는 과정부터 그렇다.

재정경제원쪽에서 불가방침이 언급된 직후 사실여부를 묻자 통산부
관계자는 "사업계획서 제출후 공발심 개최"방침을 거듭 확언했다.

불과 며칠이 지난 15일.

제출된 사업계획서는 분명히 없는데 "공발심"이 열렸다.

이처럼 상황이 달라진 이유를 묻자 이 관계자는 "실무자의 고충으로
이해해 달라"고 우물거렸다.

공발심 안건 대상으로 결정된 과정도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

그동안 15번이나 열린 공발심에 신규진입문제가 올라온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번 심의대상은 특정기업의 제철업 진출문제가 아니다.

새로 제철소가 건립되면 산업전반에 어떤 파급효과가 있는가를 알아보는
것"이라는게 통산부의 궁색한 해명이다.

그러나 공발심 위원들에게 제출된 관련자료에는 특정기업이 못박혀 있다.

오히려 회의가 끝난뒤 통산부 차관은 "현대측이 강행할 경우 다른
부처에서도 막을 것"이라고까지 덧붙엿다.

이쯤되면 정책이 아니라 "감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물론 제철은 국민경제에 영향이 큰 산업이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하다면 결정의 투명성은 더 강조돼야한다.

정부가 맘먹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나라, 이런 제도를 가지고 어떻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가입초청을 받았는지 의아해진다.

박기호 < 경제부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