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미니시리즈 10부작 "화려한 휴가"(극본 한태훈,연출 이승렬)가 중반을
넘어섰다.

지금까지의 상태는 한마디로 외화내빈.

겉으로는 꽤 화려하고 대단한 것을 애기하는 것 같지만 들여다 보면 충실
하지 못하고 뭔가 빈약하다.

시청자들의 시선을 한번에 끌어들이려 한 듯 첫회엔 유독 섬뜩하고 자극적
인 장면들이 가득했다.

80년 5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강미림이 당시 가해자로부터 목졸려
숨지자 복수를 다짐하던 오빠 강주훈(최재성분)은 점잖던 변호사에서 고독한
킬러로 변신한다.

가는 철사로 목을 조르고 칼로 등을 찌르고 권총이 불을 뿜는다.

조직폭력배들의 원초적인 격투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화려한 폭력신이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모래시계"에서처럼 "폭력의 미학"을
논할 수준은 아니다.

이야기 전개상 불필요한 장면들이 많을 뿐만 아니라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

요즘 언론서 집중적으로 거론하는 "폭력의 미화내지 정당화" 문제는
넘어가자.

고전적인 논쟁거리인 폭력의 수용성이나 이데올로기문제를 꺼내야 하고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해도 폭력의 본질은 결국 폭력"식의 정해진 답이
있기 때문이다.

결말이 정답쪽으로 갈 것도 분명해 보인다.

드라마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들고 나오면서 몇몇 인물들을 통해
"역사바로잡기"나 "시대의 아픔"를 얘기한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직설적이고 설교조다.

극중에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돌출적으로 튀어나와 장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스케일면에서도 기존 드라마에 비할게 아니다.

마피아와 CIA가 등장하고 미국정치인들의 비자금까지 거론된다.

국내 조직폭력배의 족보가 들춰지고 야쿠자와 마약밀매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제대로 담아내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구성력이 떨어지고 날카롭거나 치밀한 맛이 없다.

크게는 벌여 놨는데 어떻게 수습할지 궁금해진다.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 송태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