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신탁이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이는 신탁부장들이 만기단축을 골자로 한 "신탁제도개선 건의안"을
재정경제원에 공식 전달하면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은행신탁은 사실 지난5월 신탁제도 개편이 이뤄진 후부터 갖가지
후유증에 시달여왔다.

재경원이 "은행신탁의 이상비대화"와 "신탁=고금리주범"이란 인식을
깔고 제도를 개편했다.

그러나 이로인해 주식 금리등 자금시장은 혼선이 초래됐고 신탁에
돈을 맡긴 고객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당장 금리만해도 그렇다.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지난 4월 평균 연 10.97%였다.

연초에 비해선 1%이상 떨어진 수준.

그러나 5월이후 줄곧 상승, 9월 연 12.18%, 10월 12.09%를 기록했다.

CP (기업어음)도 마찬가지.

CP유통금리는 4월 평균 연 10.48%에서 10월 연 14.13%으로 뛰어 올랐다.

이유는 뻔하다.

CP의 주된 매수처였던 은행신탁의 "손"이 작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들어 4월까지 월평균 4조원씩 증가하던 금전신탁은 제도개편후
2조원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대형 시중은행의 경우 월 1,500억원가량 늘어났으나 요즘엔 5백억원
증가에도 못미치고 있다.

이 정도만해도 당국이 의도하던대로 잘 흘러갔다.

그러나 고금리상품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6개월을 맡겨도 연 13%에 이르는 확정금리를 주는 상호부금이 실적배당
상품 신탁의 바통을 이어 받았던 것.

관계자들은 주식시장이 최근 죽을 쑤고 있는것도 신탁의 수신고 감소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또 최근들어선 일반불특정 금전신탁의 만기가 대거 돌아오면서 은행들은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다.

때문에 보유주식을 팔아치웠고 이는 곧바로 증시에 악재로 작용했다.

신탁관계자들은 5월 제도개편내용중 "신탁만기 1년6개월"을 대표적인
정책실패로 보고 있다.

오영황 조흥은행 신탁부장은 "신탁을 장기화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우리 경제활동의 관행상 1년 2년은 있어도 1년6개월은 없다"고 잘라말한다.

즉 자금을 위탁받아 운용하자니 대상자산의 만기구조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옵션CP와 같은 변형된 채권이 나돌지만 이마저도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제와서 신탁담당자들이 다시 만기문제를 들고 나온 이유도 또 있다.

재경원은 최근 투신사에 1개월만기도 가능한 MMF란 단기상품를 허용했다.

같은 신탁회사임에도 은행은 장기로 가고 투신은 단기로 가고 있는
꼴이다.

단기로 자금을 굴리는 부동자금이 투신에 집중됨은 말할 것도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금을 끌어모으자니 "고금리수신"이란 무리수를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2%이내로 돼있는 신탁보수는 노마진으로까지 떨어지게 됐다.

은행 신탁자산이 무수익자산화하고 있다는 자조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재경원이 이같은 문제점을 어떻게 수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