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직장인들은 바쁘다.

새벽에 영어회화 배우러 학원에 나가고 직장에서는 열심히 일하고
점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틈틈이 수영등으로 체력단련하고 저녁이면
애인이나 친구도 만나야한다.

눈코뜰새 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신세대 직장인들은 아르바이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S그룹계열 제조업체에 다니는 양태열대리(31)는 요즘도 중고생을
가르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비교적 회사가 일찍 끝나 저녁시간이 많이 남는데다 짭짤한 부수입도
무시할수 없어서다.

일주일에 두세번 아이들을 가르쳐도 한달에 50만원이상 벌수 있다.

양대리는 대학에서 과외로 돈을 모아 학비도 보태고 컴퓨터도 사고
배낭여행까지 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학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는데다 돈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는 그는
입사후에도 과외일을 계속하고 있다.

증권사에 다니는 그의 고등학교 친구들도 퇴근시간이 빠른 점을 이용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몇몇은 학원에 나가 강의를 하기도 하고 더러는 증권투자 강연회등으로
본업(?)을 살리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잊어버린 영어단어도 다시 외우게 되고 삶을
더욱 알차게 산다는 자부심도 느끼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고 신세대 직장인들이 본업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부담이 안되는 범위에서 최대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자는 것이다.

퇴근후에 고급술집에 나가 서빙을 하는 박혜경씨(가명.26)는 "하루를
두번 산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어서다.

부업을 대충 하지도 않겠지만 본업은 더욱 열심히 한다"고 당차게
말한다.

이른바 "술래바이트"를 하고 있는 박씨는 손님들에게 자신이 오피스걸임을
당당히 얘기한다.

퇴폐영업을 하는 술집을 나가는 것도 아니고 우아한 분위기에서 손님과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박씨는 같이 술래바이트를 하는 동료들중에서 돈의 유혹을 못이기고
짓궂은 손님의 요구에 따르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다.

자신은 술래바이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업무에 도움이 되는
경우를 접하기도 한다고 털어놓는다.

중견 의류업체에 다니는 그녀는 술자리에서 만난 유통업체 직원을 통해
비교적 액수가 큰 납품계약건을 따내기도 했다.

직장에서의 박씨는 이런 저런 이유로 유능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신세대 직장인에게 아르바이트는 창업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부업으로 하던 일에 자신을 느끼고 벌이가 더욱 많다고 느껴지면 아예
본업으로 바꾸기도 한다.

H그룹계열 정보통신업체에서 근무하다 나와서 소프트웨어업체를 차린
김태원씨(29)가 대표적인 케이스.

회사에서 물류관리 소프트웨어 개발을 담당하던 김씨는 퇴근후 틈틈이
대학후배들과 함께 게임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젊은층에 호응을 얻게되자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후배들과 회사를
차렸다.

대형 정보통신업체에서는 작업시간도 일정하고 판로도 확보되는등
큰 이점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회사를 키워나가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다.

처음엔 아르바이트였지만 이제는 자기의 일이 되어버린 셈.

신세대 직장인들이 아르바이트에 열심히 나서면서 직장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같은 부서 직원끼리 갖는 저녁 술자리나 회식등이 간소해지거나 횟수가
줄었다.

시간이 되면 "칼같이" 퇴근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저마다 책 한두권은
들고 다닌다.

업무의 질뿐만 아니라 삶의 질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 정태웅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