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노조가 전환기를 맞고 있다.

단체행동을 무기로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전통적 역할에서 벗어나
노조원들의 복리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고용주와 동반자 관계를 정립하는 등
새로운 활로를 찾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선 노조원이 격감, 과거 막강했던 노조위력이 점차
약해진데 따른 자구책인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노조원이 늘어나는 지역은 한국
인도 등 신흥공업국가들이 포진한 아시아대륙뿐 미국과 일본은 물론 노조
활동의 천국인 유럽도 90년대 들어 그 위세가 크게 꺾이고 있다.

실례로 프랑스의 경우 70년대 총취업자의 20%를 웃돌던 노조원 비율이 이제
8%선밑으로 떨어졌다.

프랑스 최대 노조단체였던 공산계 CGT는 노조원수가 92년 당시만해도 86만명
이었으나 1년뒤인 93년에는 63만명으로 격감했다.

영국은 79년말 현재 1,328만명이었던 노조원이 94년말에는 절반을 조금
웃도는 80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특히 젊은층의 노조기피 현상이 두드러져 25세이하 노조원 비율은 90년이후
40% 격감했다.

독일의 경우 30%대의 노조원비율이 유지돼왔으나 지난해까지 무파업전통을
지키는 "모범단체"로 여겨졌다.

노동문제 전문가들은 유럽노조가 이처럼 그 위력을 잃어가는 근본이유를
산업구조의 변화에서 찾고있다.

철강 석탄 조선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개인의 능력을
중시하는 기술및 서비스집약적 산업이 그자리를 대신하자 결집력이 약해졌다
는 분석이다.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신세대층의 개인주의가 집단행동과 배치되는 현실도
노조활동을 약화시키는 또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들어 사상 최악의 실업난이 지속되면서 근로자들이 일자리 확보
를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게 된 것도 노조약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업수당 등 사회보장제도가 완벽해지면서 노조가 설땅을 잃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따라 각국 노조단체들은 과거 단체행동에 호소하는 활동을 점차 지양
하고 자체적으로 노조원들의 복리를 높이는 쪽으로 활동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노조원들의 연금 보험및 은행거래를 도와주고 새로운 기술변화에 대응,
직업훈련을 실시하며 법률상담에도 응하는 등 그 기능을 전문화하는 단체들이
늘고 있다.

"노조원을 행동대원으로 인식하던 과거와는 달리 소비자로 간주하고 있다"는
게 파이낸셜타임스의 분석이다.

또 ABB 볼보 등 스웨덴 기업의 경우 노조가 앞장서 직장개혁을 추진,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고용주측과 공동으로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등 과거의 대립적 관계를 청산
하고 동반자 관계를 정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산업혁명의 진원지인 유럽대륙.

근로자를 대표하는 정당이 탄생하는 등 그 활동이 거셌던 이곳도 이제
산업구조의 개편, 개인주의의 확산 등 새로운 경영환경에 대응해 노조단체가
그 모습을 서서히 탈바꿈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