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에서 배운다] (상) '역류하는 소니혼' .. 기술수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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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과 창조력.
21세기 기업경영의 화두다.
대기업들에겐 풀기 힘든 난제다.
"조직의 관료화"란 난치병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의외의 다크호스가 이런 대기업병의 치료사로 나섰다.
모회사의 그늘에 가려있던 "자회사"가 바로 주인공이다.
"창조정신이 살아있는 작은 조직".
이런 특효약을 내세워 대기업에게 "경쟁력"을 수혈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 최신호는 소니, 혼다,
휴렛패커드등 대표적인 미.일 3개 대기업의 자회사를 사례로 분석했다.
내용을 3회 시리즈로 소개한다.
=======================================================================
"디지털 드림 키즈".
소니그룹이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
디지털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기업이 되자는 의미다.
디지털 사업에 소니의 미래가 달려잇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디지털 사업의 설계자는 소니그룹자신이 아니다.
창업 10년안쪽의 "어린" 자회사들이다.
기하라연구소와 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CSI).
모회사보다 "소니혼이 더 강한 자회사"로 꼽힌다.
희미해진 소니의 창업혼을 자식이 되살려 어머니에게 거꾸로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히트제품을 흉내내지 않은 창조의 승부사".
기하라연구소의 기하라사장이 지난 47년 도쿄통신공업(소니의 전신)입사
당시 배운 소니혼이다.
기하라사장은 지금도 소니혼의 신봉자다.
기하라연구소 분위기도 "도쿄통신공업 초창기와 비슷하게" 꾸미고 있다.
기하라 연구소의 총직원수는 30여명.기하라사장의 입사당시 소니의 직원
숫자와 비슷하다.
뭣보다도 "젊은 직원들의 활발한 신기술 개발"이 소니 창업당시의 투혼을
쏙 빼닮았다.
기하라 연구가 설립된 것은 기하라 사장이 소니 전무로 재직하던 지난
88년.
정년(65세)을 3년 앞둔 때였다.
기하라 사장의 재능을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회사측이 짜낸 아이디어가
기하라연구소 설립이었다.
이런 회사의 전략은 적중했다.
설립후 2년만인 90년, 기하라연구소는 세계 최고속 3차원 컴퓨터그래픽(CG)
을 개발했다.
그후 3년반만에 싸고 질높은 3차원 CG기술의 실용화에 성공했다.
소니는 기하라연구소가 개발한 화상처리기술의 상품화를 연구중이다.
기하라는 기술면에서 이미 모회사보다 한수위에 올라 있다.
기하라 연구소의 "청출어람" 비결은 "엄선된 소수정예의 인재"다.
기하라사장은 연구원 면접을 반드시 직접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직원을 뽑을 때는 학창시절 활동을 반드시 묻는다.
컴퓨터를 스스로 만들었거나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등 뭣이든 개발한 경험이
있다면 합격이다. 기술세계에서 성장할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하라 사장이 인재를 골라내는 비법이다.
소니혼 유지의 비결이기도 하다.
소수정예, 청년주의도 기하라 연구소의 인재관리 원칙이다.
기하라연구소의 연구원은 20명.
이들은 대부분 20대, 30대의 젊은 기술자다.
소니혼에서 기하라에 필적하는 자회사가 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CSL)다.
CSL은 기하라창업과 같은 해인 88년 발족됐다.
창업모토는 "컴퓨터 역사에 남을 가치를 가진 독창적 연구".
대형 복합 네트워크환경에 적합한 고도의 컴퓨터 운영체제(OS), 신형
인터넷 소프트웨어등 CSL이 개발한 기술일부는 이미 소니에서 상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소수정예라는 인사전략은 CSL도 마찬가지다.
연구원은 불과 18명.
그러나 CSL의 연구실적 평가시스템은 "잔인할" 정도다.
CSL의 연구원 전원은 1년 계약직이다.
1년동안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그만둬야 한다.
한사람씩 협상을 통해 연구실적을 토대로 매년 연봉이 정해진다.
양 자회사의 인재나 기술이 뛰어나다보니 자회사에서 모회사로 인재가
역류하는 현상도 생겼다.
소니는 지난 4월 그룹 직할의 "아키텍처연구소"를 세웠다.
네트워크, 소프트웨어등 정보기술관련의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전략적
연구소다.
소니는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 CSI연구원을 앉혔다.
소니의 중앙연구소와 VTR부문에도 기하라의 연구원 3명이 옮겨 왔다.
그러나 이들에게 "서자출신"이란 눈길을 보내는 직원은 아무도 없다.
자회사에 뿌리를 내린 소니혼.
소니는 자회사로부터 이런 투혼을 수혈받아 제2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모회사 출신"이란 겉치레 프라이드는 이제 공허한 메아리가 된 것이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9일자).
21세기 기업경영의 화두다.
대기업들에겐 풀기 힘든 난제다.
"조직의 관료화"란 난치병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의외의 다크호스가 이런 대기업병의 치료사로 나섰다.
모회사의 그늘에 가려있던 "자회사"가 바로 주인공이다.
"창조정신이 살아있는 작은 조직".
이런 특효약을 내세워 대기업에게 "경쟁력"을 수혈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경제주간지 "닛케이 비즈니스" 최신호는 소니, 혼다,
휴렛패커드등 대표적인 미.일 3개 대기업의 자회사를 사례로 분석했다.
내용을 3회 시리즈로 소개한다.
=======================================================================
"디지털 드림 키즈".
소니그룹이 내걸고 있는 슬로건이다.
디지털 시대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기업이 되자는 의미다.
디지털 사업에 소니의 미래가 달려잇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디지털 사업의 설계자는 소니그룹자신이 아니다.
창업 10년안쪽의 "어린" 자회사들이다.
기하라연구소와 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CSI).
모회사보다 "소니혼이 더 강한 자회사"로 꼽힌다.
희미해진 소니의 창업혼을 자식이 되살려 어머니에게 거꾸로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히트제품을 흉내내지 않은 창조의 승부사".
기하라연구소의 기하라사장이 지난 47년 도쿄통신공업(소니의 전신)입사
당시 배운 소니혼이다.
기하라사장은 지금도 소니혼의 신봉자다.
기하라연구소 분위기도 "도쿄통신공업 초창기와 비슷하게" 꾸미고 있다.
기하라 연구소의 총직원수는 30여명.기하라사장의 입사당시 소니의 직원
숫자와 비슷하다.
뭣보다도 "젊은 직원들의 활발한 신기술 개발"이 소니 창업당시의 투혼을
쏙 빼닮았다.
기하라 연구가 설립된 것은 기하라 사장이 소니 전무로 재직하던 지난
88년.
정년(65세)을 3년 앞둔 때였다.
기하라 사장의 재능을 더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회사측이 짜낸 아이디어가
기하라연구소 설립이었다.
이런 회사의 전략은 적중했다.
설립후 2년만인 90년, 기하라연구소는 세계 최고속 3차원 컴퓨터그래픽(CG)
을 개발했다.
그후 3년반만에 싸고 질높은 3차원 CG기술의 실용화에 성공했다.
소니는 기하라연구소가 개발한 화상처리기술의 상품화를 연구중이다.
기하라는 기술면에서 이미 모회사보다 한수위에 올라 있다.
기하라 연구소의 "청출어람" 비결은 "엄선된 소수정예의 인재"다.
기하라사장은 연구원 면접을 반드시 직접한다.
"대학을 갓 졸업한 직원을 뽑을 때는 학창시절 활동을 반드시 묻는다.
컴퓨터를 스스로 만들었거나 소프트웨어를 작성하는등 뭣이든 개발한 경험이
있다면 합격이다. 기술세계에서 성장할수 있는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기하라 사장이 인재를 골라내는 비법이다.
소니혼 유지의 비결이기도 하다.
소수정예, 청년주의도 기하라 연구소의 인재관리 원칙이다.
기하라연구소의 연구원은 20명.
이들은 대부분 20대, 30대의 젊은 기술자다.
소니혼에서 기하라에 필적하는 자회사가 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CSL)다.
CSL은 기하라창업과 같은 해인 88년 발족됐다.
창업모토는 "컴퓨터 역사에 남을 가치를 가진 독창적 연구".
대형 복합 네트워크환경에 적합한 고도의 컴퓨터 운영체제(OS), 신형
인터넷 소프트웨어등 CSL이 개발한 기술일부는 이미 소니에서 상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소수정예라는 인사전략은 CSL도 마찬가지다.
연구원은 불과 18명.
그러나 CSL의 연구실적 평가시스템은 "잔인할" 정도다.
CSL의 연구원 전원은 1년 계약직이다.
1년동안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 그만둬야 한다.
한사람씩 협상을 통해 연구실적을 토대로 매년 연봉이 정해진다.
양 자회사의 인재나 기술이 뛰어나다보니 자회사에서 모회사로 인재가
역류하는 현상도 생겼다.
소니는 지난 4월 그룹 직할의 "아키텍처연구소"를 세웠다.
네트워크, 소프트웨어등 정보기술관련의 연구개발을 전담하는 전략적
연구소다.
소니는 이 연구소의 소장으로 CSI연구원을 앉혔다.
소니의 중앙연구소와 VTR부문에도 기하라의 연구원 3명이 옮겨 왔다.
그러나 이들에게 "서자출신"이란 눈길을 보내는 직원은 아무도 없다.
자회사에 뿌리를 내린 소니혼.
소니는 자회사로부터 이런 투혼을 수혈받아 제2의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모회사 출신"이란 겉치레 프라이드는 이제 공허한 메아리가 된 것이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