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은 오랫동안 대구경제의 견인차였다.

그러나 안팎으로 상황이 열악해진 지금 섬유는 갈수록 ''미운 오리새끼''가
되어가고 있다.

이 지역 섬유산업의 현황과 문제점 대책을 점검한다.

< 편집자 >

======================================================================

"섬유산업을 한다는 것이 죄인으로 취급되는 상황에서 계속 사업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30년 넘게 섬유업을 해왔다는 대구섬유업계의 한 원로 사장은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이같이 자신의 솔직한 심경을 피력했다.

밖으로는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의 후진국에 밀리고 있고 지역에서는
대구를 전국 최하위의 지역총생산(GRDP)도시로 만든 주범으로 천대받고
있다는 것이 그의 하소연이다.

또 다른 원로급 섬유인은 "수출입국을 기치로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고 삼성 코오롱 동국 갑을 등 굴지의 대기업들을 성장시켰으며 지금도
연간 1백20억원을 넘는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등 역할을 다하고 있으나 이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구 섬유업계의 최근 분위기는 실망을 넘어서 절망에 가까운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견직물 조합의 장해준상무는 "과잉생산으로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릴 것
없이 서로 목전의 이익만 챙기려고 이전투구의 출혈수출을 감행해 수출량의
증대에도 불구하고 업체의 경영체질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것이 대구
섬유의 현주소"라고 밝혔다.

대구상의나 견직물조합 등 관련기관에서도 구조고도화니, 다품종 소량
생산이니, 기술투자니 하는 대책을 20년 전부터 내놓고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70년대의 상황에서 변화된 것이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의 유재선원장은 "비싼 돈을 들여 도입한 최신 워터
제트룸을 4천대이상이 가동을 중단하고 있으며 재고도 7억야드를 넘어서는
등 사상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국무역을 비롯한 대부분의 업체가 10%-40%의 직기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고비용 구조 해소가 어렵다는 인식에 따라 해외로 설비를 이전하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갑을은 지난 6년간 전체 생산설비의 80%를 스리랑카 중국 우스베키스탄
지역으로 이전했고 대한방직도 대구공장의 정방기와 연사기 2만2천여추
등의 생산설비를 지난 3월 중국 청도로 옮겼다.

대구상의 박명철 국제부장은 "동국무역 태왕 등 중견기업의 설비 이전이
계속되고 있고 자본력이 미약한 영세업체들까지 컨소시엄을 구성해 해외로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95년을 기준으로 해외진출 허가 건수가 8백17건, 투자건수 6백47건,
투자금액이 5억5천만불에 이르고 있다.

박부장은 "더우기 그동안 해외진출이 금지되어온 염색까지 해외투자가
허용되면서 대구섬유산업은 껍데기만 남게되는 위기에 봉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국 등 대기업 계열은 물론 내노라하는 섬유 업체들이 국내사업 축소를
추진하고 있으며 갑을은 장기적으로 국내에서는 섬유를 더이상 하지않겠다며
공장매각을 추진중이다.

지난해 이후 대구섬유업체들이 잇따라 정리해고 등으로 감량경영에 나서고
있으며 재고처리를 위해 대경직물상사를 설립하는 등 자구책에 나서고
있으나 지난 1일 수출 1천만달러탑을 수상한 중견업체인 혜천을 비롯한
대림섬유, 성보, 제림, 창미 등 비교적 건실한 것으로 알려진 업체들까지
잇따라 도산해 충격을 주고 있다.

합섬직물위주의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육성을 추진중인 패션산업도
서울지역에 편중된 구조를 탈피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더우기 대구시까지 경쟁력이 떨어진 섬유업체의 집단이주를 추진하고
있어 업체들이 느끼는 체감경기와 사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이진무 대구시 정부부시장은 "대구지역 산업구조의 개편을 위해서는
섬유업의 비중을 줄이고 첨단화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섬유업체의
해외 이전을 본격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섬유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최근 대구섬유업체 사장들에게 가장 실감나는 한마디의 질문이다.

[ 대구 = 신경원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