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만드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

혼다기연공업 창업자인 고혼다소이치로가 남긴 명언이다.

기술개발과 창조정신을 강조한 경영철학이었다.

여기서 "혼다이즘"이란 유행어도 나왔다.

한낱 자전거방을 오늘날 세계 굴지의 자동차업체로 키워낸 "엔진"도 바로
혼다이즘이었다.

그러나 이 혼다이즘도 이젠 구형엔진이 돼 버렸다.

혼다를 "세계최고"로 질주시킬 최신형 엔진이 필요한 때가 왔다.

그래서 나온게 "성능향상과 코스트삭감의 양립"이다.

단순한 기술개발에서 한발더 나간 21세기판 신혼다이즘이다.

이 첨단경영노하우의 개발자는 뜻밖에도 혼다에 자동차 부품을 대주는
중소하청업체였다.

혼다가 지분 20%를 갖고 있는 클러치 생산업체 FCC가그 주역이다.

일본 중부 시즈오카현 하마나호에 자리한 FCC 본사 앞에 서면 여느
중소업체에서는 볼수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안쪽에 솟아오른 거대한 빌딩.

바로 기술연구소다.

신혼다이즘의 산실이기도 하다.

63년에 설립돼 지금은 연구원 1백30명을 거느리고 있다.

FCC의 총직원수는 8백명.

그 가운데 20%가 연구원인 셈이다.

여기서는 소재에서 기계까지 부품생산에 필요한 기술은 뭐든지 연구되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연구과제만도 1백여개에 달한다.

"하청업체"란 딱지는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그때 약간 원가를 끌어내리는 하청업체들은 생존에 한계가 있다".

야마모토 FCC사장의 신혼다이즘 발상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당장이야 원가를 조금 줄여 자동차업체들의 가격인하 요구를 막아낼수
있지만 결국에는 막다른 길에 봉착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먹고살기 위해서는 지금 살림이 아무리 어려워도 연구개발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야마모토 사장은 혼다출신이다.

지난 82년 부친으로부터 FCC경영을 물려받기전까지 그는 혼다에 몸담았다.

야마모토 사장이 입사당시(64년) 혼다는 급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 경험한 혼다의 왕성한 연구개발 열기를 야마토모사장은 FCC로 옮겨
왔다.

FCC의 첫 경영목표를 "연구개발형 기업로의 변신"으로 정한 것도 이래서다.

20,30대 젊은이 중심의 연구풍토도 이식했다.

더불어 혼다의 "황금기"까지 통째로 가져오고 싶은게 야마토모사장의
욕심이다.

이런 꿈이 이뤄지고 있다.

미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해 주력 차종인 "새턴"에 FCC의 클러치판을
채용키로 결정했다.

세계최대 자동차업체를 사로잡은 포인트는 "상식을 뒤집는 발상과 이를
가능케한 기술"이었다.

기존 클러치판은 도너츠모양의 마찰재를 맞붙여 만들었다.

마찰재 가운데를 도려내 사용하기 때문에 쓰레기가 많이 나왔다.

FCC는 이런 폐단을 없애기위해 마찰재를 테이프처럼 롤상태로 만든뒤 얇은
4각형으로 잘라 붙이는 방식을 개발했다.

마찰재 붙이는 시간도 클러치판 1장당 6초로 단축됐다.

덕분에 자동차업체에 납품하는 클러치판 가격이 10% 싸졌다.

쓰레기를 거의 없애고 코스트 삭감까지 이뤄낸 것이다.

모회사인 혼다이외로 판로가 넓어지면서 FCC의 매출곡선은 치솟았다.

반면혼다의 매출곡선은 하향곡선을 긋고 있다.

90년도 매출을 1백으로 했을때 95년도 혼다의 매출은 12.6% 하락했다.

그러나 FCC는 7.6% 상승했다.

95년 매출액경상이익율도 7%로 혼다(1.9%)를 크게 앞질렀다.

해외사에서 부는 신혼다이즘 바람도 거세다.

"FOG(future operating growth)".

생산설비 증설없이 인력과 기존설비의 활용방식을 뒤바꿔 생산성을 끌어
올리자는 운동이다.

3년전 미국 오하이오 공장에서 시작돼큰 효과를 발휘하며 세계 각국의
혼다공장으로 퍼지고 있다.

벽안의 신혼다이즘개척자가 등장한 것이다.

오는 98년에는 혼다가 창립 50주년을 맞는다.

여기에 때맞춰 혼다이즘 개편작업도 한창이다.

그러나 정작 혼다직원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

혼다를 새롭게 단장할 참신한 아이디어가 말랐다고 자인한다.

자회사에게 거는 혼다의 기대가 남다른 것도 이래서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