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업이 다 그렇지만 특히 정보통신산업의 여건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국내 정보통신장비산업은 서비스다양화에 따른 고도의
기술변화에 부응하랴,급격한 시장개방 파고에 대처하랴 이만저만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정보통신관련 기기및 부품에 대한 관세를 오는 2000년까지
완전 철폐하는 다국간"정보기술협정"(ITA)이 연내에 체결되리라는 소식은
아직 국제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국내 정보통신관련 산업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미국 EU 일본 호주 싱가포르등 28개국의 참여가 예상되는 이 협정이
체결되면 2000년까지 4단계에 걸쳐 컴퓨터하드웨어및 소프트웨어 반도체
통신기기등 4개분야 180개 품목의 관세가 완전 철폐된다.

각국은 오늘 개막되는 마닐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에서
이 협정에 대한 의견을 조정한 후 오는 12월 싱가포르 WTO(세계무역기구)
회의에서 이를 타결지을 방침이라고 한다.

ITA구상은 원래 미국 통신기기의 대아시아판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클린턴행정부가 올초에 내놓은 것으로 통신강대국 위주의 논리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정보통신분야의 관세철폐는 장기적으로 보아 어느 특정국가에만
득이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특히 세계유수의 반도체수출국이자 21세기 통신대국을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당장은 국내 관련산업에 충격이 크더라도 국내
통신장비산업의 자생력을 키워 "통신자립"을 앞당긴다는 각오로 관세철폐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미국 통신장비업계의 아시아시장 진출에 위기감을 느껴 ITA체결에
반대입장을 표명해온 일본이 최근 입장을 바꾼 것이나 싱가포르 홍콩등
일부 아시아 개도국들이 이미 정보기기관세를 철폐한 것은 모두 장기적
안목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국내 통신산업계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대변화에 휩싸여있다.

특히 서비스분야에 신규사업자들이 속속 참여하면서 장비수요도 급격히
늘고있다.

올해 선정된 신규 사업자들이 필요로 하는 장비만도 5조원규모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 통신서비스사업에 필요한 핵심장비는 거의
외국업체에 의존해온 것이 우리의 현실이며 앞으로도 당분간은 큰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볼 때 최근 국산정보기기의 품질이 많이 개선됐고 우리가
개인휴대통신(PCS) 표준기술로 개발한 CDMA(부호분할다중접속) 기술은
수출까지 하는 등 그동안 우리업계와 정부가 쏟아온 노력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수 없다.

ITA 조기체결전망은 이같은 우리의 기술개발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정보기기 관세철폐에 따르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된다.

통신장비제조와 서비스사업이 별개로 분리돼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두개의 사업을 함께 하고 있는 거대 선진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업계는 물론 정부차원의 철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