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다.

성격이 포악했을뿐만 아니라 심술이 많았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를 보고 사람들은 "왜 저런 사람을 부인으로 맞으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경마술을 익히고자 하는 사람은 사나운 말을 골라서 타지요.

내가 이 여자와 잘 산다면 세상 누구와도 상대할 수 있을 겁니다"고
답했다고 한다.

"위대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그의 악처 크산티페가 없었다면 탄생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증명해주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크산티페를 악처라고만 단정지울 수는 없다.

철학자이기 전에 한가정을 책임진 가장으로서 소크라테스는 무능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그의 행동이 생계와는 무관했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크산티페가 소크라테스에게 행한 행동들은
그녀의 입장에서 당연했을런지 모를 일이다.

"바가지"를 긁었던 크산티페의 행동이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위대한
철학을 낳게하는 "동기부여"를 한 셈이다.

필자가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를 문득 떠올리는 까닭은 현재 기업이
처한 환경과 너무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환경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자신의 심술궂은 아내에게 고통을 당했기에 위대한 철학이
가능했듯이 기업 또한 환경의 활용여하에 따라 또다른 시행착오를
방지하며 발전할 수 있다.

사실 지난 1년은 기업들이 한시도 마음을 놓을수 없는 한해였다.

대내외적으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경기는 침체됐고 기업들은 감량경영을
서둘렀다.

경영난으로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도산은 확산됐다.

기업들은 또 우수한 기술과 자본을 가진 외국업체들과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괴팍한 크산티페의 심술을 자기완성적 철학으로
받아들였듯이 우리도 작금의 현실을 또다른 성장을 할 수 있는 "크산테페의
동기부여"로 활용할 수 없을까.

우리는 크산티페의 심술을 위대한 철학으로 승화시킨 소크라테스의
자기완성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무엇이 크산티페를 악처의 대명사로 만들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지않은 소크라테스와 무능함이 크산티페를 악처로
반들지는 않았는지, 현실에 대한 게으른 준비와 태만함이 이 현실을 악처로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를 곱곱 따져 보아야 한다.

지금의 위기글 악처가 아닌 "현명한 크산티페"로 바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