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이 무거워 변화가 더딘 철강업계, 그중에서도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동국제강그룹이 "서슴없는 개혁"의 깃발을 치켜들어 업계의 화제다.

동국제강그룹의 장상태회장(69)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치열한 경쟁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서슴지 말고 개혁하라"고 강력히
지시했다.

이에따라 동국제강은 장회장의 지시사항을 포스터로 제작하고 각 부서별로
경비절감을 포함한 리스트라 계획안을 마련하는 등 전례없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 회사는 총수의 개혁의지를 사보에도 특집으로 실어 전사 차원의
의식개혁 운동으로 연결시킨다는 계획.

또 연합철강 한국철강등 계열사들도 개혁의 대열에 조만간 동참할 것으로
보여 장회장의 개혁선언은 전그룹 차원으로 확산될 전망이다.

장회장은 서슴없는 개혁의 지표로 다음 4가지 사항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째 포항 신규공장 건설에 동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

따라서 모두가 비장한 각오로 공장건설에 임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는 실제로 "실패란 있을 수 없다"며 "목숨과도 바꾸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둘째 1인 3역의 동국인이 되라고 밝혔다.

"누구든 현재 하고있는 업무외에 다른 업무도 한가지 이상은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능력배양과 체계를 갖추라"는 게 장회장의 지시사항.

셋째는 지시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혁신하는 체제를
만들라고 당부했다.

마직막으론 "저성장 시대엔 경쟁하는 유형이 다르다"며 "환경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체제로 변신하라"고 밝혔다는 것.

업계는 동국제강의 이같은 개혁시도에 다소 의아해 하면서도 앞으로의
진행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업계에선 동국제강이야말로 "개혁"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보수적인 회사로 인식돼 왔다.

실제로 동국제강은 지난 54년 창립해 40여년간 쇠만을 만들며 남들이
유행처럼 따라간 사업다각화에 한눈을 팔지 않은 골수 철강기업.

이에 대해 동국제강 관계자는 "약 7천억원을 투입해 내년 8월 준공예정인
포항공장의 마무리 공사를 앞두고 막바지 피치를 올리자는 뜻에서 장회장이
개혁을 강조한 것"이라며 "특히 포항공장이 완공돼 연산 3백만t 체제의
후판과 형강라인이 가동되면 동국제강은 철근업체가 아니라 후판업체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에 의식도 바꾸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 직원은 "회장의 개혁선언이 과거의 경영혁신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며 "어쨌든 뭔가 변한다는 건 좋지 않으냐"고 말했다.

장회장은 그동안에도 "가장 좋은 거름은 농부의 발걸음"이란 경영철학으로
경영혁신을 시도해왔지만 이번 개혁선언은 직원들에 대한 전달 강도가
예전같지 않다는 것.

쇠덩이처럼 단단하기로 유명한 동국제강이 장회장의 엄명으로 과연 얼마나
유연하게 변신할지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