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일각에서 자금출처를 불문에 붙이는 SOC 장기채권 발행을 경제난 타개
의 한 획기적 방안의 하나로 재검토하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끌고있다.

여권의 한 고위소식통은 24일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조치로 받
아 들여질까봐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미 여권핵심
부에 필요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식통은 그러나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때와 같이 이같
은 "혁명적" 조치도 이르면 내년초쯤에 예고없이 시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
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여권이 SOC무기명채권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배경에 대해 <>실명
제실시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30조원정도의 지하자금을 양성화하고 <>금리
하향안정화를 도모하고 <>중앙은행의 공개시장조작정책을 유효화할수 있다는
점등에 이견이 없다는 점을 들었다.

또 현재 엄청난 물류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사회간접자본미비 상태를 개선하
는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는 것.

무기명 장기채권 발행추진은 현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금융실명제가 정치적 논리로는 성공했지만 경제논리로는 다소 실패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데서 출발한다.

실명제가 실시된지 3년이 넘었지만 과표양성화가 제대로 되지도 않고 지하
경제의 규모도 줄어들지 않은 대신 과소비가 늘어나고 저축률이 떨어지고 있
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는 것이다.

여권핵심부는 그러나 실물경제를 살리기 위해 과연 경제개혁의 큰 성과로
내세웠던 금융실명제의 근간을 무너뜨리면서까지 무기명 채권을 발행해야 하
는가에 대해 최종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

이 소식통은 금융실명제의 성공여부에 대한 평가와 관계없이 경제를 살리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현안이 됐고 국가발전이나 정권 재창출을 위해서도 "
명분보다 실리를 택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여권내부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
다.

그는 특히 내년부터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시행되면서 재산가들의 과소비가
더욱 늘어나고 저축률이 떨어지게 될때 이같은 무기명 채권발행등의 정책이
더욱 절실해질 것이라며 이르면 내년초에 전격적으로 정책전환이 이뤄질 가
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도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곧바로 과소비로 이어진
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재산이 밝혀지는 것을 꺼려하는 심리적 요
인등이 겹쳐 장기적으로 저축률이 떨어지게 되고 결국 이는 지하경제를 지속
시키거나 과소비로 연결되게 마련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여권 소식통은 또 상업차관의 대폭 허용이 금리 하향안정화에 도움이 될 가
능성이 높긴 하지만 기업들에 환차손이라는 위험부담을 안겨주는데다 국내물
가 앙등에 연결될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이같은 부작용이 없는 지하자금양성화를 통한 금리안정과 산업자본
확충의 필요성이 높아질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상업차관의 대폭 확대로 대선정국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에 엄청난 혼
란을 가져올 것으로 우려했다.

대기업들이 수억달러의 상업차관을 들여왔을때 그자금이 대선정국하에서 상
당부분 정치권으로 유입되지말라는 보장이 없는데다 사실여부를 떠나 그같은
주장이나 의혹이 제기될때 정치권이 그 혼란을 감당하기가 힘겨워지게 된다
는 것이다.

무기명장기채권 발행이 금리 하향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분석에 일부에
서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그러나 현행보다 저율의 장기채권을 발행하더라도 무기명으
로 할 경우 상당부분의 지하자금을 흡수할 수 있게되고 이는 2차적으로 은행
회사채 금리에도 영향을 미칠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은행의 여수신금리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무기명장기채권 발행은 또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조작이 제대로 기능할수 있
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금융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체제에서 우리나라 금융정책이 소기의 성
과를 거두려면 한국은행의 공개시장조작과 금융기관 합병등을 통한 경쟁력제
고가 선행돼야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들도 국공채 발행이 미미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통안증권
발행을 통해 시장조작을 하는 것은 한계가 있음이 이미 증명됐다고 보고 있
다.

또 한은의 재할정책이나 지준정책도 한계상황에 와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고 보면 산업채권등의 대량 발행과 그에 따른 공개시장조작정책이 가
장 큰 정책수단이 된다는데 의의를 다는 금융전문가는 거의 없다.

여권소식통은 지난 60년대 중반 장기영부총리시절 가정주부들의 곗돈이나
사채를 연리 20%가 넘는 역금리로 제도권에 끌여들여 산업자본화했던 때를
상기시켰다.

지금은 그때와 비슷한 다소 혁명적인 조치가 마련되지 않고는 우리나라의
왜곡된 자금흐름을 바로잡을 길이 없다는데 여권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이제 결단의 시기만 남았다고 소식통은 자신있게 전했다.

< 박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