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장 빨리 오라 그래"

93년 8월 11일 저녁, 대우빌딩 25층 회장부속실.

여비서는 인터폰으로 이한구경제연구소장을 찾는 김우중회장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는다.

금융실명제 실시가 전격 발표된 직후였다.

이소장은 즉시 달려가 금융실명제 실시의 배경과 파장, 그리고 그룹차원의
대책에 대해 브리핑했다.

계열사 사장단 회의가 소집된 건 김회장이 이소장의 브리핑을 받고 모종의
"결심"을 하고 난 뒤였다.

그룹 경제연구소장.

요즘 그들이 바빠지고 있다.

경제현상을 이론적으로 분석, 자료를 제공하는 싱크탱크 역할에 치중해온
경제연구소가 이제는 그룹과 그룹총수들의 최측근 참모로 부상하고 있다.

경영에 심각한 상황을 몰고오는 중요한 변화 시점에는 비서실장이나
기조실장과 함께 혹은 그 보다 앞서 그룹총수의 호출을 받는 이가 바로
경제연구소장이 된 것이다.

대기업그룹이 종합연구소 체제를 갖춰 운영중인 경제연구소는 현재 9개.

현대 삼성 LG 대우 쌍용 기아 한화 포항제철 한보그룹 등이다.

이들 9개 경제연구소의 대표들은 회장이 주재하는 그룹 주요 사장단회의에
참석해 의사결정에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현대그룹 정몽구회장이 취임직후 첫 계열사보고를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으로부터 받은 사실은 경제연구소장의 신분상승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자동차 건설 전자 등 쟁쟁한 주력 계열사 사장들을 제치고 김중웅원장이
불려갔으니 말이다.

정회장의 경영철학인 "가치경영"의 방향과 줄기가 이 자리에서 구체화
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이들 경제연구소장은 최근 "또 다른 기조실장" 혹은 "회장실 경제수석"
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한화경제연구원 노성태원장은 그룹회장 직속기구인 비서실
기획팀장을 겸직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경제연구소장들의 위상이 이처럼 처음부터 높았던 건 아니다.

한화경제연구원의 경우도 지난 87년 설립후 90년 노원장이 취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김승연회장이 대표이사를 겸직했다.

특별히 연구소장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국내외 경제환경 변화속도가 어지러울 정도로 빨라지면서 전문가들인
이들의 위상도 그만큼 급변하고 있는 셈이다.

"쇼트텀(short term)"의 승부를 결정짓는 경영자들의 "동물적인 감각"
뿐만 아니라 "롱텀(long term)"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론가들의 냉철한
시야가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그런면에서 경제연구소는 각 그룹의 기획조정실과 그 역할이 차별화된다.

기조실이 비교적 단기적 전망에 근거해 사업계획을 수립한다면
경제연구소는 좀 더 거시적인 시각에서 미래의 틀을 새로 짠다.

LG의 "도약2005" 대우의 "세계경영" 쌍용의 "아시아 비전21" 기아의
"인도네시아 국민차 프로젝트" 한화의 "제3의 개혁" 등은 모두 경제연구소가
그린 밑그림이 꽃피운 작품들이다.

정부 역할보다는 민간부문의 자율적 판단이 중요해진 것도 연구소장의
위상을 높이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경제연구소장은 국내 핵심 오피니언리더 가운데 "민의
대변인"으로 분류된다.

관주도의 경제정책에 대한 견제역할을 하면서 때론 대항 논리도 만들고
있어서다.

이를 위해 이들이 펼치는 주요 활동중 하나가 언론에 "얼굴 내비치기"다.

신문사의 논객으로, 방송사의 패널리스트로 바쁘다.

민간시대의 "스타"로까지 올라서고 있다.

그룹 총수의 "경제교사" 역할도 빠뜨릴 수 없는 이들의 고유 업무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직무이기도 하다.

경제 얘기부터 해외토픽 정치루머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는 총수들의
질문에 우물쭈물하지 않으려면 뉴스의 사소한 잔가지들도 꿰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H그룹 비서실 관계자는 "연구소장들이 주요 계열사 사장을 제치고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도 이렇게 자주 가까이서 만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경제연구소장 자리가 쉬운 자리만은 아니다.

자기 그룹의 이익만을 옹호한다는 비난을 받는 "악역"은 항상 경제연구
소장의 몫이다.

현대의 김중웅원장이 제철사업 진출을 위해 민간제철소 건설이 시급하다는
보고서를 여러차례 작성해 여론조성의 선봉역을 담당했던 것이 그 예다.

현대로서는 논객이지만 포철이나 정부 입장에서는 곱게보일 리가 없다.

지난 93년 임동승당시삼성경제연구소장(현 삼성증권사장)과 이종대
기아경제연구소장이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 타당성 문제를 놓고 산업연구원
대회의실에서 논쟁을 벌인 것도 "그룹을 위해서"였다.

여기다 최근에는 "혹"이 몇개 더 붙었다.

연구소도 어디까지나 계열사인 만큼 소장도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이
필요해졌다.

각 연구소가 그룹 계열사 범위를 벗어나 외부용역에 앞다퉈 나서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룹내 연구소의 한계를 벗어나 "권위"를 높여야 하는 것도 새로운
과제다.

한 마디로 "파워"가 생기는 만큼 그에 걸맞는 "책임"도 커져가고
있다는 얘기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