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홀은 평범한 파4홀이었다.

내 드라이버샷은 그대로 왼쪽 직격포가 되며 러프에 빠져 버렸다.

그린까지는 210m가 넘게 남았고 핀이 있는 오른쪽 그린의 오른쪽은
급격한 낭떠러지 OB였다.

더욱이 볼은 발보다 낮은쪽에 있었기 때문에 슬라이스성 구질이
불가피했다.

그런 상황은 당연히 레이업 (아이언으로 쳐 낸후 3온을 노리는 유형)을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스푼을 뽑아 들며 생각했다.

"레이업해서 보기하겠다고 치는 게 물론 정상이다.

그런데 스푼으로 쳐도 OB까지는 안 낼 자신이 있다.

스푼으로 쳐서 보기할 자신마저 없으면 어떻게 골프를 치는가"

결론적으로 나는 그 홀에서 더블보기를 했다.

OB는 안났지만 볼은 그린 오른쪽으로 벗어났고 그 볼도 나무에 가려
4온이 불가피했다.

그 홀을 벗어나며 나는 다음을 느꼈다.

"레이업의 의미는 1타손해를 감수한다는 게 아니라 최후순간까지 파를
노린다는 의미이다.

앞 상황에서 레이업을 해 홀컵 50m까지 전진했다면 파 찬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레이업해서 보기하라"고 하는 것은 실제 보기가 최고라는 말이 아니라
레이업을 선택하라는 "권장"에 불과하다.

어쩌면 레이업이 가장 공격적 전략일지 모른다"

그렇게 느끼기는 했지만 난 그때의 더블보기에 대해 별 후회를 안했다.

왜냐하면 "각오하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골프엔 항상 유혹이 있고 가끔은 "유혹"이란 단어가 좋을때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