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나라인 엘살바도르와 축구전쟁까지 치른 온두라스.

스페인의 식민통치를 몇백년동안 받아온 중미국가로 인디오와 스페인
계통의 혼혈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나라.

김포공항에서 미국으 로스앤젤레스까지 10여시간.

엘살바도르행 비행기는 밤에 밖에 없어 LA공항에서 지루한 기다림
10여시간.

자정이 지나 떠난 비행기는 5시간후인 새벽에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공항에 도착.

산살바도르공항에서 다시 2시간동안 대기후 온두라스행 비행기에 갈아탄
것은 오전 9시.

온두라스의 수도 테구시갈파를 거쳐 신원온두라스봉제공장이 있는 제2의
도시 산페드로술라에 발을 내린 것은 오전 10시 30분께.

신원은 200만달러를 투자,산페드로술라의 봉제공장을 지난해 4월에
인수했으나 올 1월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 니트제품
월 100만달러어치를 생산, 미주지역에 수출하고 있다.

신원이 교통도 불편한 이 오지국가에 봉제공장을 운영하게된 것은
봉제산업은 100% 자동화 할 수 없어 사람들의 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따라서 저임금이 경쟁력에 절대적이기때문.

온두라스의 최저 인건비는 하루 3달러 정도.

게다가 이나라는 원자재의 수입에대해 면세를 해주고 수출에도 세금을
안물리는 혜택이 있다.

수출쿼터도 없고 주수출시장인 미국과 인접한 것도 최대 장점이다.

그러나 모두가 매력적인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전혀 다른 기후 문화 풍습의 차이는 한국기업의 진출을 어렵게하고
있다.

이공장의 책임자인 김화수이사는 처음 이곳에 오면 6개월간은 모기때문에
고생을 한다고 한다.

모기들이 어떻게 아는지 현지인은 안물고 외지인만 골라 6개월간을 줄곧
따라다닌다는 설명이다.

따가운 햇볕도 견디기어려울 정도.여기에 한국음식을 만들만한 재료도
귀해 어려움은 가중된다.

날씨가 더워 이나라에서는 한국인에게 맞는 채소와 쌀을 얻기가 힘들다.

고산지대인 옆나라 과테말라에서 공수해오는데 한국인끼리 매점매석이
일어날 정도라는 것.

이때문에 어떤때는 1주일 이상 쌀밥을 구경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한다.

문화 풍습의 차이도 곤혹스럽게한다.

온두라스국민은 자존심이 매우 강해 자존심을 상하게해서는 절대
안된다는 것.

또 막대기로 근로자들을 가리키면 안되고 일 잘한다고 등을 두드려줘서도
안된다.

이공장에는 온두라스인이 450명 정도 일하는데 대부분이 여자.

18세 여자의 경우 아이 한둘을 키우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기자가 만난 15세의 키작은 근로자는 벌써 두번째 아이를 임신해 부른배를
만지고있었다.

우리처럼 주부가 아닌 것이 우리를 당황케한다.

결혼을 안한 상태이다.

온두라스는 모계사회이다.

어머니가 모든 것을 책임진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보는 것이 실례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집에서 할머니가 키우는데 보모비를 낸다는 것이 우리와 또다른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운 것은 노조와의 화해라고 김이사는
강조했다.

온두라스의 대표적인 일간지 "라 프렌사" 10월11일자에는 닐 크로니
국제섬유노동조합 서기관의 한국기업에대한 경고성 글이 실려있었다.

"한국기업인 T사와 K사가 노조책임자를 해고시켰는데 위법이다.

복직시키지않으면 온두라스내에서 회사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앞으로 기업활동을 포기해야할 것이다"

김이사는 이글이 실리기전부터 노조와의 화해가 가장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간파했다.

그래서 월요일에 일을 시작하기전 30분간 예배를 본다.

온두라스가 가톨릭국가이므로 기독교식으로 예배보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것.

처음에는 참석률이 40%정도였으나 현재는 거의 100%에 달하고있다.

이 방식이 회사와 근로자가 일체감을 형성하는데 큰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직원은 예배를 본후 자기가 그동안 원단 4장을 훔쳐갔다며 자진
퇴사했을 정도.

김이사는 이밖에 통근버스문제 급식문제등 직원복지를 위해 밤낮없이
뛰고있다.

그동안의 노력 덕택으로 경고성 글이 게재된 며칠후 또다른 일간지인
"엘티엠보"에는 "한국의 우수기업인 신원이라는 회사는 한국관리자들이
스페인어를 배우고있다.

온두라스사람과 가까워지고 보다 나은 관리를 위해서이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현지 신원노조위원장도 한국기업이 도움을 많이 주고있다고 말할
정도가 됐다.

간혹 한국에서 원단이 늦어져 일을 쉬게 될 경우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걱정까지 할 정도이다.

<정용배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