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 매서운 감원서리가 지나간 미국에서는 요즘 다운사이징 대
업사이징 논쟁이 한창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다운사이징=효율성 증가"는 잘못된 공식이란 판정이다.
인원을 자른다고 해서 기업경영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운사이징이 한풀 꺾였다고는 하지만 미재계에서는 여전히 감원의 칼날이
매섭다.
컨설팅업체 챌린저 그레이&크리스마스사에 따르면 미국기업들은 올들어
현재까지 36만2,000명을 잘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나 많은 수치다.
이런 감원태풍은 전미구매자협회(AMA)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된다.
AMA가 지난주 1,441개 중견급이상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중
절반이상이 96회계연도(95년7월~96년6월)에 직원수를 줄였다.
지난 회계연도와 비슷한 수치다.
그러나 이 기간동안 새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이 더 많았다.
조사대상의 68%가 "업사이징"을 했다.
전년동기(58%)보다 10%나 많은 기업이 인원을 늘린 셈이다.
미국 기업들이 한쪽에서는 기존 직원들을 잘라내는 동안 다른편에서는
새로운 일꾼들을 뽑아들였다는 얘기다.
그 결과 감원한 기업들의 순인력감소분은 0.7%에 지나지 않았다.
5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감원을 단행한 기업들중 25%이상이 결과적으로 인력을
또 늘렸다는 점이다.
어차피 새로 뽑을 인원을 왜 자르는 것일까.
효율성을 높이겠다고 무조건 인원을 자르고 보니 부작용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90년이후 감량경영을 했던 기업들의 절반정도는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 아무런 영업호조를 맛보지 못했다.
감량기업중 불과 3%만이 생산성 급증을 누렸을 뿐이다.
반면 감량경영에 돌입한 기업중 대부분(72%)은 즉각적인 사기저하의
슬럼프에 빠졌다.
우울증에 걸린 직원들이 고객을 끌어들일 리 없다.
감원이후 고객관계나 제품 및 서비스 질이 좋아진 기업은 26%에 불과했다.
반면 어쩔수 없이 직원을 재충원해야 했던 기업은 42%에 달했다.
이들은 감원이후 서비스와 제품의 질이 떨어졌다는 고객들의 아우성에
시달렸다.
결국 "시장수요"에 의해 다시 직원을 뽑아들였다.
잘못된 감원이었던 셈이다.
감원만으로 효율성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감원이후 직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없어진 인원만큼의 몫을 나머지
직원들이 해낼 수 있다.
그러자면 교육비를 늘려야 된다.
AMA가 감원후 교육비 지출을 늘린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비교해봤다.
그결과 훈련을 강화한 기업중 약 67%는 이익과 생산성이 올라갔다.
75%는 제품과 서비스 질이 향상됐다.
훈련비를 지출하지 않은 업체중 같은 효과를 본 비율은 절반에도 훨씬
못미쳤다.
다운사이징은 해당 기업에만 영향을 미치는게 아니다.
실직자들이 급증하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
실업자 양산으로 전국민이 떠안아야 하는 경제적 부담도 만만찮다.
설사 감원으로 개별적인 기업들의 경영효율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감원비용이 나라 경제로 전가됐다면 국가효율성 측면에서는 결코 "향상"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다운사이징 반대편에 항상 업사이징이 있었다.
덩치 큰 기업들이 "대기업병"을 치료하기 위해 다운사이징을 하는 동안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열면서 새일자리를 대량 공급했다.
미국에서 다운사이징 열풍이 분다고 다른 나라들이 무조건 쫓아갈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92년 2월 미국경제 침체기 이후 지금까지 미국에는 1,2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실업률은 5.1%.
7년만에 최저치다.
미국 전체인구 2억6,300만명중 절반가까이(45%)가 일을 한다.
역시 사상 최고기록이다.
감원서리 속에서도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것은 "업사이징"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80년대 10년간 미국 500대 기업이 자른 직원수는 300만명을 헤아린다.
그러나 이 기간중 고용은 1,800만명 늘어났다.
결국 이 기간동안 2,1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났다는 얘기다.
이 업사이징의 주역은 중소기업들이다.
80년대 새로 문을 연 창업기업은 총 150만개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업체당 10명씩만 직원을 둔다해도 1,500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던&브래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96년 상반기동안 미국에서는 8만5,000개의
업체가 창업됐다.
여기서 창출된 일자리는 40만6,000개에 달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올 한햇동안만도 80만명이 새 일자리를 얻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런 현상은 "미국"고유의 것이다.
유럽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70년대이후 지난 25년동안 유럽연합(EU)에서 새로 창출된 일자리는 전체
노동인구의 약 6%(850만명)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기간동안 미국에서는 무려 65%(4,600만명)의 일자리가 새로 생겼다.
90년대들어서는 차이가 더 심해졌다.
미국에서 다운사이징이 무리없이 "실험"될 수 있었던 것은 활발한 창업이
없어진 일자리를 메워준 덕분이다.
미국에는 "기업가정신" "풍부한 벤처자금" "활발한 자금시장" 등 창업
여건이 두루 갖춰져 있다.
지난 4년반동안 미국에서는 총 3,000개 업체들이 주식시장에 신규
상장됐다.
유럽에서는 6년반동안 상장된 기업이 150개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의 감원 열풍이 미국만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감원"은 단지 유행하는 경영기법에 휩쓸려 이뤄질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손익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창업이 뒷받침되는 미국에서조차 이제 경영 "추"가 다운사이징에서
업사이징쪽으로 향하고 있다.
다운사이징의 손익계산이 "손"으로 결론났다는 뜻이다.
< 노혜령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