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우기계는 화학기계전문 생산업체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선회기류건조장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특허를 획득한
것이다.

장우기계는 이달들어 환경부의 G7프로젝트에 참여, 한국기계연구소와
공동으로 오폐수처리장에서 발생되는 슬러지를 처리할 수 있는 건조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이처럼 끊임없이 첨단기계를 개발해 나간다.

지금까지 장우가 개발한 화학기계는 32개에 이른다.

중소기업으로서는 보기드문 케이스다.

이 회사의 허병수사장(51)은 하루에 보통 4시간이상을 기업연구소에서
보낸다.

연구원들과 함께 제품개발에 몰두한다.

그러나 허사장은 연구소안에만 계속 박혀 있는 기업인이 결코 아니다.

일단 제품이 개발되면 직접 발로 뛴다.

기술개발과 현장서비스,이것이 바로 이회사의 강점이다.

허사장은 지난 83년 사업을 시작했다.

자형이 소유하고 있던 부산신평공단에 있는 섬진공업을 임대해 첫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주제품인 가정용보일러가 잘 팔리지 않았다.

더욱이 건설회사에 주로 납품했는데 한결같이 대금을 장기어음으로 결제해
줘 받은 어음이 부도나는 일이 잦았다.

그는 이 공장을 화학기계공장으로 전환했다.

업종을 전환하면서 그는 기업을 경영하는데 있어 기술개발과 신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그는 또 섬진공업을 경영하기 이전 10년간 제일중기에서 영업현장을 뛰었다.

영업사원이었으나 기계공학과를 나온 덕분에 고장수리까지 직접해줄 수
있었다.

영업을 하면서 그는 기술개발의 중요성을 느꼈다.

영업사원으로서 기술개발에 직접 참여했다.

덕분에 허사장은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송원칼라에 색소를 생산할 때 건조
하는 3개공정을 1개공정으로 줄인 자동화 기계를 처음 개발, 공급했다.

허사장은 90년7월 부산 기장에 700평의 땅을 사서 공장을 직접 지었다.

그동안 모아둔 4억원의 자금과 은행돈 1억원등 총 5억원으로 설비투자를
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어려움이 따르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설비투자위축으로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더욱이 공장을 짓고 장비를 많이 도입하는데 많은 돈을 쓰느라 운전자금을
충당할 길이 없었다.

동래에 있는 집을 팔았다.

그래도 돈이 모자랐다.

불안하고 초조한 날이 1년이상 계속됐다.

92년에 접어들면서 그는 결단을 내렸다.

이제 사장이 아니라 다시 영업사원으로 되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명함에 대표이사 대신 영업부장이라고 새기고 신규시장을 찾아나섰다.

아무리 작은 기계라도 주문을 받았다.

덕분에 조선내화로부터 특수내화물류이송시스템을 수주받았다.

송원산업으로부터 염료건조기를 주문받기도 했다.

돈이 되지 않는 애프터서비스도 밤샘을 해가면서까지 서슴지 않고 맡아
주었다.

이같은 그의 철저한 신용과 기술이 업계에 알려지면서 한국유리등
대기업들의 주문이 다시 밀려들기 시작했다.

주문이 늘어나자 공장을 더욱 넓혀야 했다.

지난해 700평이던 공장을 2,400평으로 크게 늘렸다.

맨발로 뛴 덕분에 이제 화학기계분야에서는 선두업체로 떠올랐다.

이 회사 1층에 있는 기업연구소에 들어서면 연구원들이 여전히 기계및
화학분야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부산대학 수산대학과도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해양대학과는 농림수산부의 개발과제인 고추와 마늘을 건조하는 장치도
개발중이다.

잠시도 머물지 않고 첨단기술을 개발해 나간다.

장우기계의 가장 귀중한 자산은 역시 과감한 기술개발투자와 현장서비스
이다.

< 이치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