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간 협의체인 WTO(세계무역기구)가 출범한 이후에도 미국 등 선진국은
쌍무협상을 통한 통상압력을 늦추지 않고 있다.

한편 통상관련 국제규범에 대해서도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국가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국익만을 앞세운 선진국들의 힘겨루기가 어느때보다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국제통상학회는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27일 "한국무역의 문제점"
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해 최근의 국제통상협상의 흐름을 짚어보고
향후 우리나라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모색했다.

이날 발표에 나선 김인철 성균관대교수는 "수입급증으로 인한 산업피해
판정은 해당품목이 국내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보다 면밀히 점검한 뒤에
내려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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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보조금과 상계관계 ]]

김기수 < 세종연 연구위원 >

WTO 이후에 가장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로 거론되는 것이 소위 말하는 경쟁
정책인데, 경쟁 정책에 대한 논의의 기초는 공정한 경쟁 조건의 구축과 이를
위한 국가주권의 제한이다.

미국은 경쟁 정책에 대해 매우 적극적이다.

WTO 보조금 및 상계관세 협정의 강화에 미국이 가장 적극적이었던 사실과
경쟁 정책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결국 궤를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향후 전개될 경쟁정책을 위한 다자간 협의에서 미국이 어떠한
정책을 취할지는 이 보조금 협정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아무튼 WTO 협정을 통해 보조금 및 상계관세에 대한 새로운 국제 규범이
탄생한 것은 자유무역의 진흥을 위한 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우선 정부 보조금에 대한 정의가 명료화되면서 보조금을 둘러싼 논쟁의
소지가 과거에 비해서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과거에 거침없이 자행되었던 정부의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 대해서는
상당한 수준으로 통제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WTO협정은 보조금 문제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가이드 라인을
제공해 주고 있을 뿐이다.

보조금에 대하여 국내 규범에서 규정되어야 할 자세한 내용까지 이 협정에
언급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정상의 미비점에서 비롯되는 분규와 불만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범세계적 발전을 지향하는 국제무역의 흐름이 지속되는
한 정부보조금에 대한 국제규범은 향후 지속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전개될 경쟁 정책에 대한 논의는 이러한 맥락에서 대단히 중요한데,
만약 경쟁 정책을 위한 다자간 협의에서 눈에 띠는 진전이 있게 되면 정부
보조금에 대한 국제규범은 자연히 강화될 것이다.

정부 보조금에 대한 규정이 명료해지면 상계관세 분야는 상당 부분
자동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WTO 협정을 통해 보조금과 관련된 기본적인 용어의 명료화는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보조금 및 상계관세를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점이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해결된 것은 사실이나 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안이 아직도
적지 않게 남아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우선 상계관세의 경우 이것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영향력의
문제는 여전히 상존한다.

대표적으로 상계관세 문제를 제기하는 주체가 기업이든 혹은 정부이든
문제의 제기 자체만으로도 상대방에 대해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상계관세 제도에서 비롯되는 구조적 영향력의 문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다.

영향력의 문제가 상존하는 만큼 이 제도가 남용될 소지는 충분하다.

그러므로 상계관세에 대한 판정이 무혐의가 될 경우 피제소자가 소송중에
입은 피해를 보상하든지 혹은 제소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것만이 상계관세를 둘러싼 구조적 영향력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보조금 규정을 위반했다는 사항을 실증하기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도 WTO의 새로운 규정은 지침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