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끝인가.

지난 93년 약사의 한약조제권 문제로 한의사.약사간의 분쟁이 시작되면서
한의원과 약국이 집단 폐업해 국민에게 충격과 불편을 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6개월 전에는 약사들에 대한 한약조제시험을 둘러싸고 한의원들이 문을
닫아 국민들만 큰 피해를 입었는데 요즘 다시 똑같은 움직임이 되풀이 되고
있어 안타까움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의료정책에 항의하는 뜻으로 최근 대토론회를
열기로 한 것.

전국 72개 한방병원 한의사와 개업의사 6천여명중 일부가 이같은 결의에
따라 토론회에 참석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내달 3일 한의원의 부분휴업은
불가피하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일에는 서울시내 병의원과 약국들이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문을 닫고 진료를 중단했었다.

서울시의사회 소속 개원의사와 약사등 1천3백여명이 의료보험수가 현실화
등을 논의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의료개혁토론회를 개최함으로써 진료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얼핏보기에는 문제의 본질이 한.양방 의료계 각자의 생존권과 관계가 있는
만큼 당연한 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3년전이나 지난 5월의 모습과 전혀 다름이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자신들의 주장을 앞세워 집단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맞서고 있는 상황을 놓고 어느쪽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어느쪽도 물러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 10명중 6명이 이같은 대립에서 빚어지는 집단행동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뿐아니라 7명은 양측이 국민보건향상보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투쟁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전국 1천44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결과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을 객관적 위치에서 지켜보는 국민들은 요즘의 상황과
관련해 몇가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국민건강을 볼모로 하는 "건강 파수꾼"의 분쟁이 과연 정당한 행위
냐는 것이다.

내부적으로 해결해야할 사안을 놓고 제3자, 그것도 몸이 불편한 환자를
돌보아야 한다는 의무를 팽개칠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성경을 읽기위해 촛불을 훔치는 행위와 같다"는 비판이 여기서 나온다.

두번째는 집단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표출되고 있는 집단이기주의에 식상한 판국에 우리상회의
엘리트계층인 의사나 한의사들도 같은 행태를 보인다는 것에, 그것도 전과
별 다름없이 되풀이 한다는 사실에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번째는 각자의 주장은 다르지만 서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앞세우는 점이
전이나 지금이나 결국 같지않느냐는 것이다.

의사와 약사들은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의 한방정책관실 신설과 낮은
의료보험수가에 대해 비판했다.

반면 한의사들은 한방정책관실 대신 한약담당국 신설과 한약분쟁에 따른
수업거부로 제적된 한의대생들의 복학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결국면이 아닐수 없다.

국민들의 이같은 지적에도 양측의 대립이 진화되기는 커녕 더욱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다.

의사협회는 서울을 시작으로 각 시도별로 토론회를 잇따라 개최할 계획
이어서 집단휴진사태가 지방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의사들도 토론회와 별도로 정부당국이 한의대생들을 제적, 유급시킬
경우 전국 한의사가 면허증을 반납하고 휴폐업하는 방침도 검토하고 있어
불길이 자못 거세어질 위험까지 있다.

이처럼 팽팽한 구도에서 양측이 모두 만족할 만한 절묘한 해결책은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방법이 꼭 없는 것은 아니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자세에서 벗어나 서로 한발짝씩 양보하고 국민들을
위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합의점을 찾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
하다.

"문닫은 병원이나 약국과 한의원을 보고 싶지 않다. 환히 열린 문을 들어서
건강상담을 하고 아픈 몸을 치료받고 싶다"는 국민들의 소망에 귀를
기울여야 할때다.

이젠 정말 그만해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