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라레코드는 음반유통사업으로 출발해 제작에 뛰어든 회사입니다.

유통을 담당하다 보니 우리 음반산업계가 너무 체계가 없고 고유색채를
살린 상품도 거의 없다는데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국악음반 복각사업처럼 수익성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우리음악의
보전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앞장서서 해나가겠습니다"

음반업계에서 "민족주의적 기업"으로 유명한 신나라레코드(대표 강활모)의
정문교 부사장(44)은 기업이념을 "대형매장을 통한 체계적인 유통사업으로
우리 음반유통을 과학화하고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전통계승 차원에서 꼭
필요한 음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전국에 2곳의 도매점(300평이상)과 2곳의 소매점을 가진 음반제조및 유통사
"신나라레코드"가 출발한 것은 81년.

2.5t 트럭에 새 음반을 싣고 각 지방으로 운송한 것이 시초였다.

당시는 서울에서 음반이 발매되면 지방에서는 보름후에나 받아볼수 있던
시절.

이 보름동안 재빠른 업자들은 복사품을 만들어 정품이 오기전 지방상가를
휩쓸었다.

복제품으로 인해 정상품이 제 대접을 못받는 현상을 고쳐야 우리 음반산업이
제 자리를 찾는다는 생각에 "빠른 운송"을 시작한 것.

신나라는 이어 84년 종로3가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규모인 50평에 음반을
쟝르별로 구분하고 리스닝시설을 갖춘 첨단 소매점을 열었다.

현재 신나라는 강원 충청 전라 경상도 음반유통량의 50%, 서울지역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음반제작을 시작한 것은 88년.

청계천 황학동을 뒤져 5만여장의 SP판을 사들여 "판소리 5명창"(송만갑
이동백 정정렬 김창용 김창환, 1만장 판매) "일축 조선소리판 춘향가" "여류
명창시리즈" "폴리돌 적벽가" "콜럼비아 춘향가" 등 100여종의 복각음반을
냈고 박동진 김소희씨 등 명창의 소리도 음반으로 만들었다.

국악합주단 "어울림"과 "오케스트라 아시아"(지휘 박범훈)의 음반을 내고
공연때마다 후원(매회 약3,000만원)도 하고 있다.

문화유산 보전 차원에서 "한반도의 아리랑"(CD 4장) "중국 러시아의 해외
동포 아리랑"(CD 17장) "유성기로 듣던 불멸의 명가수"(CD 23장) "한국의
범종"(CD 2장) 등 자료가치가 높은 음반도 냈다.

고복수 남인수 이난영 윤심덕씨 등 일제시대 대중가수의 노래를 모은
"불멸의 명가수"는 예상밖에 1만장이상 팔리는 히트를 기록했다고.

97년에는 상여소리 종소리 등을 담은 "한국의 소리 100선"과 "굿 시리즈"를
낼 계획이다.

신나라레코드의 95년 매출은 150억원, 96년 목표는 350억원이다.

<조정애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