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신앙생활로 뭉친 마을사람들 사이에 물정 모르는 처녀 베스가 산다.
영화 "브레이킹 더 웨이브"는 순백의 여인이 이방인 남자와 나누는 "죽음에
이르는 사랑" 얘기.
올해 칸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이다.
단순한 러브스토리같지만 사랑을 종교보다 높은 경지로 끌어올린 감독의
감수성이 놀랍다.
신혼의 단꿈도 잠시, 베스는 유정에서 일하는 남편 얀을 떠나보내고
바닷가에 서 있다.
그녀는 날마다 기도하며 하느님과 대화한다.
"그이를 빨리 보내주세요"
"유정에서도 얀은 필요해"
"상관없어요, 돌아오게만 해줘요"
"정말 그러길 바라느냐"
마침내 얀이 돌아온다.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채.
평생을 병상에서 보내야 하는 얀은 베스에게 거짓말을 한다.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눠봐.
그 얘기를 들려주면 하나가 된 느낌일거야"
지어낸 얘기로 모면하던 베스는 차츰 구역질나는 "체험"을 들려준다.
회복기미가 보이자 그녀는 더욱 바삐 움직이고 한차례 죽음의 위기를
맞고 나서는 아예 사창굴로 뛰어든다.
주변의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온몸을 던져 믿음을 실천하는 베스.
감독은 7장의 이야기 첫 부분에 각각 한폭의 풍경화를 배치했다.
신혼시절을 그린 2장의 해변그림과 얀이 돌아온 직후 4장에 비친 석양속의
무지개, 5장 "의심"에 나오는 안개와 무너진 돌담, 6장 "믿음"에 펼쳐지는
산과 들판, 7장 "희생"의 핏빛 노을과 먹구름.
수많은 서술보다 효과적이다.
얀이 목발을 짚고 일어섰을 때 베스는 세상을 떠난다.
타락한 여자로 몰린 베스에게는 장례식도 허용되지 않는다.
관을 배에 싣고 유정으로 가는 얀.
혼자 장례식을 치른 그는 깊디 깊은 안식의 바다속에 베스를 묻는다.
오열하는 그의 귀에 멀리서 들리는 "푸른 종소리".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 생을 마감한 베스가 교회의 종이 되어 돌아온다는
설정이 이채롭다.
(12월7일 코아아트홀 씨네하우스예술관 신촌 영화마당 개봉 예정).
< 고두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