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불과 1년새 수출효자에서 무역수지
적자의 주범으로 몰리는 신분의 수직추락을 경험해야 했다.

올해 수출이 당초 예상치나 작년 실적에 크게 못미치는 매우 부진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올들어 지난 10월말까지 수출은 150억달러.

연말까진 180억달러에 그칠 전망이다.

이는 연초 예상치 370억달러는 물론 지난해의 221억달러보다도 적은
것이다.

수출부진은 주력품목인 16메가D램의 가격하락에서 기인한다.

16메가D램의 개당 가격은 지난해말 50달러에서 11월 하순 10달러선으로
급락했다.

수출물량이 작년보다 80%이상 늘어났지만 국제시세 하락에 대처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반도체 가격하락은 실리콘사이클로 설명된다.

통상 4~5년 주기로 반복되는 반도체 경기를 실리콘사이클(혹은 올림픽
사이클)로 부른다.

특히 메모리반도체의 대표적 품목인 D램은 경험적으로 볼때 철저히 이
사이클을 오르내리며 가격의 등락을 거듭해왔는데 올해와 내년이 바로
침체국면에 해당한다.

반도체는 4년마다 주기적으로 차세대반도체를 개발, 생산해왔다.

이같은 세대교체과정에서 조금만 공급과잉이 돼도 가격이 급락하는데
요즘이 그런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반도체업체들의 무더기 신증설이 이뤄졌고 반면 최대 시장인
미국의 퍼스널컴퓨터는 판매가 부진해 가격폭락을 가져왔다.

반도체를 리스크가 큰 산업으로 부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이다.

내년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업체들은 예년과는 달리 전망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다는 반응이다.

올해보다 10%가량 늘어난 200억달러가 되지않을까 조심스레 내다보는
정도이다.

수출을 전망하려면 물량과 가격이 전제돼야 하는데 가격의 경우 한달앞을
내다보기도 힘들다.

게다가 내년부터 본격 출하될 64메가D램의 시장동향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불투명하다.

또하나의 큰 변수는 대만업체들이다.

삼성전자 수준의 물량을 신.증설하는 대만업체들은 자국시장의 수입대체는
물론 해외시장에서 한국업체들과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다행히 한국업체의 기술력이 대만보다는 월등히 앞서고 있다는 점과 국내
업체들이 메모리중심에서 탈피, 주문형 반도체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등
비메모리분야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다.

또 미국반도체산업협회와 데이터퀘스트 등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단체 및
연구기관들이 잇따라 내년하반기부터 세계반도체경기의 회복을 예상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김치락부회장은 이같은 전망치를 근거로 "국내
업체에도 내년하반기부터는 따뜻한 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김낙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