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의 날은 1년에 한번 찾아오는 무역인들의 잔칫날.

하지만 올해 맞는 무역의 날 분위기는 썰렁하기만 하다.

잔뜩 가라앉은 수출경기 탓이다.

지난 10월말 현재 수출증가율은 4.6%.

지난 92년 이후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수출경기의 선행지표인 신용장 내도액 증가율도 마이너스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때문에 올해 무역적자는 200억달러에 육박하고 멀지 않아 외채도 1,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도대체 수출이 이처럼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6만여 무역업체를 대변하고 있는 한국무역협회 구평회회장을 만나 무역
업계의 고민과 현안들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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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담 = 임혁 < 산업1부 기자 > ]

-이번 무역의 날은 수출이 부진하고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는 가운데
맞이하게 돼 소감도 여느해와 다를 것 같은데요.

<> 구회장 =수출부진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다소 우울하고 답답한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과거와는 달리 기업가 근로자 정부 모두가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과거에도 두차례의 석유위기 등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저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어려움은 한단계 더 나은 발전을 하기 위한 호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번 기회에 각 경제주체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제도나 관행 같은 경제
운용 시스템을 효율화시킨다면 말이지요.

최근 정부와 기업이 "경쟁력 10%높이기" 운동에 나선게 그 좋은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합니다.

-지난 2년간 호조를 보였던 수출이 올들어 급속히 부진해진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 구회장 =금년의 수출부진은 수출단가하락과 해외수입수요 위축, 그리고
경쟁력 약화 등 세가지 요인 때문입니다.

수출단가는 지난 1~9월중 10%나 하락했습니다.

때문에 수출물량은 비교적 호조를 보였음에도 금액기준으로는 크게 둔화된
것입니다.

해외수입수요도 작년의 18% 증가에서 올해는 4% 증가에 그쳐 크게
위축됐지요.

작년에 해외바이어들의 재고가 워낙 크게 늘어나 수입을 연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경쟁력 면에서는 국내의 고비용-저효율 구조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무역협회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수출이 호조를 보였던 작년에도 경쟁력은
수출에 마이너스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기에다 올해는 엔화마저 약세여서 대일수출은 물론이고 제3국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상품들의 수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외채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대한 우려도 대두되고 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 구회장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확대되고 있어 금년말에는 대외부채가
1,0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외채수준은 우리 경제의 수출입규모나 외채상환능력에
비추어 볼 때 아직 크게 걱정할 단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우리나라의 외환수입에 대한 외채원리금 상환비율을 보면 5%
수준으로 개도국 평균치인 16%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입니다.

다만 외채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에 있고 주식투자자금의 불안정성 등
외환수급상 불안요인이 상존하고 있음은 유의해야 하겠지요.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제공이나 국제투자는 우리 경제의 장기적
전망이 밝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려우므로 자본도입확대에 장기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내년의 수출입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 구회장 =내년에는 금년과 같은 악재가 예상되지 않고 해외수요도
좀더 회복돼 여건이 다소 호전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진국의 경우 성장률은 올해와 비슷하겠지만 그동안 누적된 재고가
해소됨에 따라 금년에 비해서는 수입수요가 늘어날 전망입니다.

동남아는 내년에도 활발한 경제개발을 지속할 것이며 중남미경제와
동구권경제도 점차 안정을 찾고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따라 무역수지가 올해보다 개선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큰 폭의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운게 사실입니다.

수입면에서는 원유 곡물 등 국제상품 가격의 안정으로 원자재 수입의
안정세가 예상되고 소비재수입도 올해보다 증가세가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내년에는 수출증가율이 다소 높아지고 수입증가율은
낮아져 무역수지가 소폭이나마 개선될 전망입니다.

-최근의 수출부진과 관련해 정부에 대해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

<> 구회장 =WTO출범으로 이제는 정부재정에 의한 직접적인 수출지원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대신 WTO가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수출보험 및 무역인프라 확충 등을 통한
지원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수출보험기금을 대폭 확충하고 평가등급이 낮은
중소기업의 수출보험요율을 대폭 인하해주기 바랍니다.

또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금액이 선진국에 비해 영세하고 정부대 민간의
부담비율 또한 현저히 낮은 수준인 점을 고려해 정부재정에 의한 연구개발
투자를 확충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는 국가이미지 및 수출상품홍보 EDI추진 무역전문인력 양성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고 자기상표 및 공동브랜드 개발과 국제 전시회참가
등에 대한 지원도 경쟁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와함께 수출관련 행정규제를 과감히 완화 내지 폐지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입니다.

-내년에는 우리나라가 OECD회원국이 되는데 우리나라의 OECD가입은
우리경제, 특히 수출에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 구회장 =OECD가입 자체만으로 우리가 선진국으로 진입했다고 할 수는
없지요.

오히려 OECD가입은 우리의 정책이나 관행을 선진화해 우리 경제의 선진국
진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데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입니다.

수출과 관련해서는 OECD가입에 따라 수출상품의 대외이미지 제고에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지금은 선진국과 같거나 혹은 보다 좋은 품질의 제품을 내놓아도
중저가품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OECD가입으로 한번에 이러한 이미지를 불식시킬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
수출상품의 성가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OECD가입을 선진국 진입의 계기로 삼으려면 각 경제주체별로 많은 노력도
필요할텐데요.

<> 구회장 =OECD에 가입하면 시장개방이 확대될 것이고 이는 곧 기업에
대한 보호막을 없앤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간섭을 그대로 둔다면 우리 기업이 선진국
기업과 경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집니다.

따라서 정부의 규제폐지야말로 매우 시급한 과제이자 경쟁력 10% 높이기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국내 투자환경 개선 등 외국기업과의 경쟁 및 협력기반도
확대해야겠지요.

기업입장에서는 OECD의 각종 협약이나 권고 결정 등이 어떤 형태로든
경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이에 적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환경 경쟁정책 부패 등과 관련한 OECD의 논의에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를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에 강요하기 어렵다는 점과 외국기업의 M&A공세도 강화될
것이란 점 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와함께 고유기술을 개발하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일도 기업들의
과제입니다.

근로자들 역시 지금까지는 임금인상 등 단기적인 측면에서 권익보호에
주력해온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산성 향상과
노동시장의 유연화 필요성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 2기에 들어갔는데 앞으로 대미통상
관계는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 구회장 =클린턴의 2기 행정부도 수출증대를 통한 고용기회의 창출과
경제성장 추구라는 기존의 통상정책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세부적인 추진방법에서는 다소 변화가 예상됩니다.

집권 1기에 기존 무역협정의 이행에 주력했다면 집권 2기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시장개방을 위한 무역협정의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내년말로 무역진흥기금이 폐지되고 나면 협회운영에 차질은 없겠는지요.

<> 구회장 =무역진흥기금은 지난67년부터 징수하기 시작해 그동안
여러가지 사업을 많이 해왔습니다.

정부방침은 내년말로 폐지키로 돼 있지만 현재 이를 연기해주도록 정부와
협의중입니다.

무엇보다도 ASEM컨벤션센터를 건립하는데 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폐지를 연기하더라도 무역진흥기금이라는 명칭은 다른 이름으로
바꾸고 자금용도도 ASEM준비자금으로 국한시킬 생각입니다.

-21세기를 앞두고 무역협회의 역할과 기능은 어떻게 구상하고 계시는지.

<> 구회장 =무역협회는 무역정보제공, 전문인력 양성, 해외시장 개척활동
및 국제통상협력 등 기존의 사업 이외에도 무역업계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개발해 명실공히 세계일류의 종합무역서비스센터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협은 2,000억달러 수출시대를 향한 각종 무역인프라 확충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무역업계와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세계시장의
무역정보를 리얼타임으로 제공하고 사이버마켓 등을 통한 전자상거래를
지원할 것입니다.

-무역센터는 ASEM개최지로 선정됐는데 준비는 잘돼가고 있습니까.

<> 구회장 =그동안 ASEM회의장으로 사용할 컨벤션센터를 비롯한 무역센터
확충사업의 타당성 조사를 끝내고 현재는 각종 설계 및 인허가업무와
토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초 예정대로 행사전인 99년말까지 차질없이 완공될 것으로 봅니다.

무협은 특히 ASEM사업을 통해 컨벤션센터 뿐 아니라 전시장 등 기존의
센터시설도 확충함으로써 무역센터를 최첨단 시설의 국제적인 종합무역
단지로 조성할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ASEM회의 이후에도 국제적인 대규모 행사를 적극 유치해
국가적 홍보뿐 아니라 관련사업에 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