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사들이 현지인의 취향에 맞춰 특화시킨 상품으로 세계 시장을 뚫고
있다.

일본이면 일본, 중남미면 중남미 각 지역별로 이른바 "지역만족형 제품"을
개발해 수출전선을 돌파하자는 것.

예컨대 땅값이 비싸고 가옥구조가 협소한 일본에서는 작고 전기가 적게
드는 세탁기를 팔고, 전압이 고르지 못한 중남미에는 전압변화에 자동으로
적응하는 냉장고를 내놓는다는 식이다.

특히 최근에는 각사별로 아시아나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높아지는 등 수출 시장이 다변화, 수출형 제품개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들어 "비디오CD"로 중국에 "삼성"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를 이용해 가정에서 노래방 기능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인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것.

가무를 즐기는 중국인들의 국민성이 잘 반영된 예다.

TV에 마이크를 꽂아 노래를 할 수 있는 LG전자의 "노래방TV"도 중국에서
빅히트한 제품이다.

삐삐 쌍방향서비스는 전세계적으로 미국 일부 지역에서만 실시되고 있다.

삼성은 이에 대응한 쌍방향 삐삐를 개발, 미국의 서비스업체 API사에
공급하고 있다.

유럽에만 통용되고 있는 GSM방식 개인휴대전화 단말기를 개발한 것도
같은 이유다.

삼성은 이를 내년부터 유럽시장에 공급할 계획.

CDMA TDMA GMS 등 그 지역에서 통용되는 규격이 무엇이건 그에 맞춰
단말기를 팔겠다는 전략이다.

LG전자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팔고 있는 VTR는 같은 급의 다른회사
제품에 비해 값이 30달러나 비싼데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VTR 바닥에 장착된 "부저" 때문이다.

도둑이 많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VTR 등 값비싼 가전제품은 도둑의
주요타깃이 되기 때문에 "도난방지형 VTR"가 특히 인기를 끄는 것이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는 "테트리스" 등 게임기능이 추가된 TV가 인기다.

이 지역에서는 특별한 놀이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아 저녁시간에 온 가족이
TV를 앞에 놓고 게임을 즐기는 일이 많다.

LG전자 나원우 TV중동.아프리카수출팀 과장은 "TV스크린에 디스플레이
되는 문자도 아랍지역에는 영어 아랍어,프랑스에는 영어 불어로 표시하는 등
소비자를 배려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고 말한다.

해태전자의 "인켈"브랜드 뮤직박스는 중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전제품
중의 하나다.

미니 컴포넌트나 휴대형카세트 대신 부피가 크고 투박한 뮤직박스가
인기를 끄는 것은 이것이 크고 화려한 실내장식으로 과시하고 싶어하는
중국인들의 욕구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제품과 함께 새로운 문화가 수출되는 경우도 있다.

LG전자가 터키에 판매하고 있는 노래방기능 TV가 그 예다.

이 제품은 노래를 즐기기는 하지만 특별한 놀이문화의 장이 없었던
터키에 소개돼 큰 인기를 끌었다.

"노래방"이란 개념 자체가 없던 이 지역에서 노래방 TV가 인기를
끈 것은 새로운 제품으로 잠재시장을 개척하고 문화를 수출한 독특한
케이스다.

이러한 지역특화제품은 소비자들의 생활문화는 물론 그 지방의 기후
국민성 범죄발생 빈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고려하는 "전방위 마케팅"의
산물이다.

이를 위해 국내 가전사들은 각 지역별 수출팀과 현지법인을 활용,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를 취합하기에 바쁘다.

현지정보에 기초한 개발및 판매전략을 수립, 그 지역 소비자 요구에 맞는
제품을 공급하거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 가전사들이 중국에서 판매,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이른바 "중국형 컬러TV"나 "중국형 VTR".

이들 제품은 유럽의 PAL방식이나 미국의 NTSC 방식 모두에 적용 가능한
"겸용형"이다.

중국에는 밀수 비디오테이프가 많기 때문에 양방식을 모두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현지 정보에 기초한 제품이다.

중남미에 수출하는 VTR 등 가전제품에 정전보상 스펙을 기본으로 장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전압이 매우 불안정한 중남미지역의 전기사정을 감안한 제품이다.

삼성 LG등 가전사들은 충전배터리를 장착해 예약녹화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VTR를 히트상품으로 만들 수 있었다.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한국형 제품을 판매했다가 된서리를 맞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점도 이같이 지역 정보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이유중
하나다.

국내 모회사에서 2년전 동유럽에 세탁기를 2만여대 팔았다가 곤욕을
치른 것이 하나의 케이스.

유럽의 수질이 석회성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은 이 제품은 찬물로
세탁을 할 경우 석회석이 응고돼 소비자들의 불만을 산 것이다.

이 회사는 이후 석회석 수질에서도 세탁성능이 우수한 유럽형 세탁기를
개발, 판매해 이 지역에서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품목은 같더라도 가전업체의 해외영업부 별로 사양이 달라지는 것은
기본이다.

대우전자의 냉장고 수출팀은 세계시장을 <>일본 <>유럽 남미 <>미주
등 3개지역으로 구분해 공략하고 있다.

일본은 가옥구조가 작고 검소한 생활습관 때문에 120 급 소형 절약형으로
시장을 파고든다.

유럽과 남미에는 300 용량대이면서 냉장실과 냉동실이 우리와 바뀐
형태의 제품을 수출한다.

"현지인들의 취향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유럽인들은 육류를 선호하는 까닭에 냉장고의 냉동기능이
강조되는 편이다"(대우전자 냉열기담당이민웅전무)

대우의 수출형 세탁기는 <>유럽형 <>미주형 <>아시아형으로 삼분된다.

미국은 애지테이터(봉)세탁기를, 유럽은 드럼식을, 아시아지역은 펄세이터
(회전판)방식을 선호하기 때문.

한술 더 떠 아예 전담팀을 구성하기까지 한다.

LG전자의 N프로젝트팀은 미국 현지형 디자인개발만을 위해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이다.

이러한 추세는 생활습관 문화취향 기술적 차이에 따라 차별화된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는 "틈새전략"의 일환이다.

현지인들이 원하지 않는 제품은 아무리 훌륭한 기능과 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라도 쓸모없다는 생각에서다.

세계를 무대로 전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는 "메가컴피티션 시대"의 승패는
현지인들의 구미에 맞는 "지역특화형 히트상품" 개발여부에 달려있는
것이다.

< 김주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