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 "희망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

일본 작가 아사다 지로의 "창궁의 묘성" (이주영 역 전 3권 한경북스 간)
에는 기적을 낳은 한 남자의 장대한 인간승리가 담겨져 있다.

제115회 나오키문학상후보작인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일본 열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베스트셀러.

서구열강의 패권다툼이 치열하던 청조 말엽.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말똥주이 소년 "춘아"가 천신만고끝에 자금성에
입성,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까지 겪는 파란만장한 삶이 줄거리다.

여기에 여걸 "서태후"와 실권없는 황제, 개화파와 수구파의 암투 등이
겹쳐져 흥미를 더한다.

주인공 춘아는 어릴때 "천하의 보화를 손에 넣을 것"이라는 노파의
예언을 듣고 청운의 뜻을 품는다.

가진 것이라곤 몸밖에 없는 그가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택한 길은
환관.

온갖 어려움을 뚫고 서태후의 측근으로 등용된 그는 타고난 성실함과
운명에 대한 믿음으로 대륙의 중핵이 된다.

기적을 이룬 힘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가난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와 사내로서 결정적 흠인 육체의 상처를
함께 지녔지만 미소와 여유있는 표정을 잃지 않았다.

변덕스럽고 냉혹한 서태후에게도 "순진무구한 소년처럼 따스하고 눈부신
모습"으로 신뢰를 쌓았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대하며 고난에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춘아는 처음부터 노파의 예언이 거짓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는 자기암시로 꿈과 희망을 키워
마침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이다.

서태후의 운명은 어떤가.

18세에 자금성에 들어와 무능한 남편대신 국정을 이끌다 스물일곱에
과부가 된 여인.

자기가 낳은 아들이 뇌성매독에 걸려 죽자 어린조카를 양자로 들여
후사를 잇게 했다.

그녀가 세번째 집정에 들어가기 직전 이화원 만수산에서 춘아에게
털어놓은 비밀은 참으로 놀랍다.

"남편과 자식을 내가 죽였노라".

절대권력을 휘두른 "철의 여인"이 짊어진 이 비극은 풍전등화같던
제국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소설속에는 환관이 되기 위한 거세과정과 과거제도등 당시 사회상을
엿보게 하는 장면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입신출세의 문은 그야말로 "바늘귀".

각지역에서 6개의 관문을 통과한 수재들이 북경에 모여 본시험인
"회시"를 치르는데 도합 9일동안 독방에서 답안을 작성한다.

응시자는 최소 2만명.

이가운데 300명이 선택된다.

이밖에 태후를 둘러싼 수구파와 광서제와 강유위를 중심으로 한
유신세력, 과거제 철폐 등 개혁을 외치다 쓰러져간 인재들, 일본 및
서구열강의 암투, 천주교 전파과정 등 격동의 역사가 펼쳐져 있다.

작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희망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라는 것.

한국판 서문에 실린 창작메모가 이를 압축해 보여준다.

"나는 주인공에게 중국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메이화즈 (몰법자,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라는 탄식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명했다.

인간은 누구나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을 가졌다.

"메이화즈"라는 주문이 그 힘을 봉해놓고 있을 뿐이다"

< 고두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