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도 인과의 법칙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한군데에서의 불균형은 꼭 다른 곳에서 문제를 낳는다.

대외거래에서의 경상수지 적자는 이른바 자본수지 흑자, 쉽게 말해서
외채 증가를 수반하게 마련이다.

민간부문의 저축이 투자수요를 채우지 못하거나 정부부문의 눈에 드러나지
않는 재정불균형이 빚어지면 외채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수 없다.

지난달 29일 한국은행은 지난 10월까지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195억달러에
달했다고 밝히고 연말까지 22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말 784억달러에 이르던 총외채가 11월에 들어 이미 1,000억달러를
넘어 섰다는 얘기다.

바깥으로부터 벌어들이지 못하고 안에서 씀씀이를 줄이지도 않으니 외국빚이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내년 전망도 밝지 못하다.

물가는 뛰고 고용마저 위협받는 상황이 가속화되고 있다.

이미 상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매출 감소와 경영수지 적자로 감량경영,
곧 고용 축소를 선택하지 않을수 없다는 기업들도 한둘이 아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이같이 어려운 상황인데도 대응자세는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집단이기주의가 여전히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등 제몫 찾기에만 급급하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노동법 개정과 관련된 노조의 총파업론도 전체 경제를 보는 시각에서
지탄받아 마땅하다.

정부 움직임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경쟁력 10% 높이기" 구호가 각 부처마다 요란하지만 실제적인 행동이 없어
도무지 설득력이 없는 듯한 감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이미 오래전부터 요란했던 규제완화는 "경쟁력 10% 높이기"에도 주요 내용
중의 하나로 들어있지만, 말에만 그치고 있을뿐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이 됐기 때문에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신인도가
높아져 차입금리도 낮아지게 됐다는 따위의 자기최면 행위에 대해 우리는
특히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

OECD 가입으로 우선 그런 부수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더라도 경제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대내 PR는 금물이다.

단기외채에 지나치게 의존했기 때문에 빚어진 멕시코 경제위기를 우리는
결코 "남의 일"일 뿐이라고 봐서는 안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외채 증가를 최소화해야 한다.

경상수지 균형을 이룰수 있도록 기업을 더 뛰게 하고 분수에 맞는 소비로
저축을 늘려나가야 한다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정부의 솔선수범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과소비를 줄이는 데도, 기업의욕을 살리는 데도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우리는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이미 여러차례 문제점을 지적한바 있지만,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긴요한 시점이라는 점을 거듭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 낸 예산안과 별도로 초긴축 실행예산을 짜는 방안까지도 검토해
봐야할 국면이다.

외채 1,000억달러를 모두 걱정하고, 이를 줄이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당면 경제정책의 가장 큰 현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