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인터페이스사의 최형식사장(37)은 바보다.

적어도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렇다.

그는 높은 보수와 세상사람들의 존경이 보장된 최고 의과대학(연세대
의대) 교수자리와 최고 종합병원(삼성의료원) 의사자리를 차례로 차버렸다.

그렇지만 그는 행복하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최상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세상이 그의 꿈이다.

메디컬 인터페이스는 최사장이 손쉬운 진료와 정확한 진단이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국내 최초의 영상정보처리 SI(시스템 통합)
업체다.

그중에서도 의료영상저장 및 전송시스템(PACS) 원격진료시스템 등의
아이템을 다룬다.

꿈이 실현되는 날 그 누구보다도 더 큰 명예와 더 많은 돈이 그의
몫으로 주어질 것이다.

사람들이여.

의학박사이자 전자공학자인 최형식사장의 이 새로운 의료 전산화시스템
개발에 주목해보자.

최사장이 본과 3학년이던 지난 80년초, 다른 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연세대도 교문을 닫고 기나긴 휴강에 들어갔다.

의대생들에겐 병원에서의 임상실습만 실시됐고 외과 지망생이던 그는
방사선과를 자주 들락거리게 됐다.

외과분야에서 X선 촬영필름은 무엇보다 중요한 기초정보였기 때문이다.

한장의 사진으로 환자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방사선과의 매력을 알게
됐다.

진단방사선과를 전공으로 택했다.

군의관시절 그는 나머지 인생을 바꿔놓은 한편의 논문을 접하게 된다.

미 UCLA대학 교수 황(Hwang)박사의 PACS(영상정보전송시스템)에 대한
글이었다.

X선 촬영필름이 필요없는 이 새로운 시스템에 그는 매료됐고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의료영상정보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연세대 의대 진단방사선과 전임강사로 있으면서도 PACS에 대한 짝사랑은
계속됐다.

결국 주변의 만류를 뿌리친채 교수직을 포기하고 미 워싱턴주립대로
건너가 PACS를 공부한다.

세계 최초로 PACS를 도입, "필름없는 병원"을 실현한 시애틀 메디건병원을
매주 찾아가 시스템의 개발과 운용을 배웠다.

이 시절 "과연 한국에 돌아가 PACS를 써먹을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으로
마음고생도 많았다.

어느날 새로 짓는 삼성의료원의 영상저장및 전송시스템(PACS)개발을
맡아달라고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물론 국내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것.

급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개발팀장을 맡았으나 쉽지 않았다.

아는 사람이 없어 가르쳐가면서 일할 수 밖에 없었다.

현재 삼성의료원의 PACS는 전세계적으로도 열손가락 안에 꼽히는 우수한
시스템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발이 끝나고 모든 것은 안정됐다.

그의 역할은 개발자에서 운용자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의 꿈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보다 나은 시스템 개발과 본격적인 원격진료시스템, 그리고 이를 위한
영상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기업체가 나을 것 같았다.

94년 35세의 나이에 드디어 사표를 던지고 SI 전문업체를 차렸다.

아직 메디컬 인터페이스사가 의료 전산시스템 분야에서 이룬 업적은
미미하다.

올 매출은 8억원을 겨우 넘길 전망이다.

그러나 멀리 떨어진 병원들간에도 영상의료정보를 손쉽게 교환할 수 있는
원격진료시스템은 이미 개발에 성공했고 올해부터 정부의 공업기반기술
지원금 6억원을 받아 "의료영상획득서버"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등 발걸음은 꽤 활기차다.

영상정보처리 시스템사업의 미래시장 규모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

이는 지금까지의 문자정보처리 시스템보다 한단계 앞선 이른바
"멀티미디어"사업으로 의료분야 뿐 아니라 영화 방송 신문 등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베이스화에 유용한 정보통신사회의 필수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사장은 아직도 병원 전산화에 대해 "본능적 거부감"을 보이는
대부분 일반 병원의 보수성에 대해서도 조바심내지 않는다.

메디컬 인터페이스는 "뜰까 안뜰까"가 아니라 "언제 뜰까"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주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