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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 문화계 결산] (1) '여성계'..남녀평등 제도적 차원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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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년이 저문다.

    올해 문화예술계에서는 구조선총독부건물 해체, 헌법재판소의 영화및 음반
    사전심의제 위헌판결, 음란출판물논쟁, 마이클 잭슨 한국공연 등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 일반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한햇동안의 문화계 이모저모를 분야별로 정리한다.

    =======================================================================

    여성계에서는 96년을 상당한 수확을 거둔 해로 평가한다.

    남녀 평등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도개선이 크게 이뤄졌기 때문.

    여성발전기본법 시행, 여성공무원채용목표제 실시, 15대국회의 여성의원
    증가가 대표적 예로 꼽힌다.

    NGO (비정부기구)가 시작해 정책을 변화시킨 예도 적지 않다.

    가정폭력방지법 제정, 성폭력방지법 개정, 남녀차별적인 고입선발고사
    커트라인의 재조정이 그런 경우다.

    여성운동이 더이상 현재에 머무르거나 과거에 발목 잡히지 않아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도 괄목할 만한 변화.

    각 여성단체가 "정보화" 주제 행사를 열고 정보센터나 정보망을 만들어
    여성들의 "정보마인드 각성"을 부르짖은 점은 진취적 시도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화추진위원회가 95년10월 발표한 "여성의 사회참여확대 10대과제"의
    한 항목으로 올7월 시행된 여성발전기본법은 제도개선의 촉매역할을 했다.

    보육시설확대 학교 급식 전면 확대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 (일명 할당제)
    등 10대과제의 근거규정을 담은 이 법의 핵심은 모든 정부 및 자치단체에
    성 차별적 요소의 시정의무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 법의 시행은 "여성채용목표제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며 헌법의
    평등조항에 위배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여성공무원 채용목표제는 10대과제중 하이라이트.

    내용은 5급이상 공무원 채용시험 (외무.행정고시)에서 여성채용
    최저치를 법으로 정한 것.

    올해 10% 내년 14%로 점차 높여 2,000년에는 20%까지 늘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 결과 올해 외무고시 1명 행정고시 2명의 수혜자를 냈다.

    여성계에서는 이에 대해 "수혜 당사자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에게
    공무원직 도전용기를 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한다.

    또 15대 국회에서는 80년 이후 가장 많은 9명의 여성의원이 탄생했다.

    대부분 전국구고 지역구 의원은 2명에 불과한 아쉬움이 있는데 대해
    여성계에서는 "절반의 승리"로 평가하고 정치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정 및 성폭력방지법 제정 및 개정은 여중고생의 잇단 출산 등 성폭력
    문제와 각종 패륜범죄로 인해 촉발된 것.

    두가지 모두 각 당과 NGO가 각각 4개 안을 만들어 국회에 상정했다
    (12월3일 현재).

    쟁점사안은 가정폭력당사자에 대한 퇴거명령제, 성폭력범죄에서 친족범위
    확대문제 등.

    남녀차별적인 고교 입학시험 커트라인 조정은 여성단체연합 (회장
    이연숙)이 거둔 성과다.

    남학생과 같거나 더 높은 점수를 받고도 선발시험에 떨어진 여학생의
    학부모들과 여성단체가 함께 시위해 결국 교육부로부터 피해학생 1만여명
    구제조치를 얻어냈다.

    이연숙 회장은 "여자고교의 수가 적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는 전체 고교를 남녀공학으로 만들어 여학생진학의 문을
    넓혀야 한다"고 전한다.

    여성계에서 또 운동차원은 물론 여성에 관한 정보의 체계적 종합과
    관리를 위해 컴퓨터통신 네트워크를 이용하기로 했다.

    여성정치연구소 (소장 손봉숙)의 "페미넷 (Feminet)" 여성개발연구원
    (원장 정금자)의 "여성정보센터"는 대표적인 예.

    여협은 올 여성대회 주제를 "정보사회와 여성"으로 정해 관심을 촉구했다.

    물론 사회 곳곳에 불합리한 요소가 남아 있지만 시급한 제도정비는
    어느정도 이뤄졌다는 것이 여성계의 자체평가.

    앞으로는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 실력을 쌓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 조정애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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