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가 인텔리겐챠의 역할을 해내고, 치부와는 거리를 두었던
파리에서는 부자동네에 화랑을 연다고 해서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오히려 전통이 있는 구역,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마레 구역이나
오데옹, 셍 제르망 등의 구역이 여전히 예술의 중심으로 남아있다.

치부에 대한 묘한 타부가 있는 파리에서는 임대료가 비싼 큰 건물에
큰 전시실을 갖고, 상업적으로 성공한다고 해서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오히려 당장은 잘 팔리지 않더라도 미술사적으로 가치를 가진 작가의
전시회를 고집스레 계속하는 화랑이 존경을 받는다.

파리의 화랑가는 각기 특성을 지닌 4개의 구역으로 나눠 볼 수가 있다.

센강 북쪽에는 퐁피두미술관 주변으로부터 피카소미술관에 이르는
마레지역이 있다.

아방가르드적인 추상미술을 중심으로 비상업적인 전통있는 화랑들이
위치해있다.

보부르, 땅쁠롱, 매그, 드니즈 르네 화랑 등과 함께 권위있는 독일
화랑인 카스텐 그레브나 오스트리아의 타데우스 로팍 등이 지사를 내어
활발한 전시활동을 하고 있으며, 한국 화랑으로는 유일하게 가나화랑이
갤러리 가나 보브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그 다음으로는 센강 남쪽의 보자르 국립미술학교를 중심으로 전통있는
화랑들이 모여 있는 셍 제르망 거리를 들 수 있다.

이 곳은 학교가 있는 거리인 만큼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화랑도 있고,
전시공간이 작은 것이 특징이다.

죠르주 필립 발로아, 디메오 화랑과 보자르 출신 작가들만 전시를 할 수
있는 크루스 보자르라는 화랑도 있다.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인기있는 거리인만큼 헝가리, 네덜란드 문화원이
있고, 라틴아메리카 문화센터도 자리잡고 있다.

이곳으로부터 인상파미술관에 이르는 파리 7구역은 고미술점이 밀집해
있기로도 유명하다.

마레와 셍 제르망 거리가 전통적으로 화랑가였던데 비해 1980년대
중반부터 오페라하우스가 건축되면서 새로운 화랑가로 부상하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바스띠유 거리로 전위적인 신인 작가들을 유치하면서 활발한
윰직임을 보이고 있는 이곳의 주요 화랑으로는 동기화랑이 있다.

마지막으로 수상관저가 위치한 마띠뇽 거리가 있는데,이 곳은 넓은
도로에 인접한 건물들이 넓은 전시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등 환경이 매우
좋은 곳이다.

그래서 값비싼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고급 화랑들이 밀집해있다.

이곳에서는 현대미술도 취급하지만 주로 구상화를 취급하며, 19세기말에서
1940년대까지의 각종 미술경향, 인상파, 입체파 등을 다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오래된 고가의 미술품들을 취급한다.

현대미술을 다루는 주요 화랑으로는 나바라, 필체 화랑 등이 있고,
인상파를 주로 취급하는 주요 화랑으로는 까죠, 말랭그 화랑 등이 있다.

예술의 도시라고 만인이 공인해온 파리의 화랑들은 국가차원에서
행해지는 여러 행정적인 도움을 받아 왔다.

그러나 지난 14년간 각종 문화활동에 지원을 아끼지 않던 사회당이
물러나고, 프랑스 정부가 경제난에 봉착하면서 화랑에 지원금을 보내는
일도 줄었고, 여기에 상당부분을 의지하고 있던 파리의 군소화랑들은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에대해 파리의 화랑가들은 미술시장이 가장 활발했던 80년대를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지 않고, 상업적인 이득보다는 미술과 대중을
연결하는 중개자로서 미술사의 흐름을 인도하는 충실하고 의연한 역할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며 자중하고 있다고 한다.

< 가나미술문화연구소 >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