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양복입은 사람이 드물었다.

물론 학생은 양복인 학생복을 입었지만 신사복이나 양장을 한 젊은
남녀는 보기 힘들었다.

교사를 하던 여인들도 치마저고리를 입었고 학교가기 전의 아이들도
다 한복을 입었다.

한복을 제대로 갖추어 입는 것은 아주 까다로웠다.

남자는 속옷으로 속적삼 속고의 또는 잠방이를 입는다.

그위에다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시 저고리 위에 조끼를 입는다.

겨울에는 조끼위에 마고자를 덧입었다.

외출할 때는 여름 겨울없이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여름 옷은 베나 모시로 지어입었다.

여자의 한복은 더 번거로웠다.

가랑이 통이 넓고 밑이막힌 속속곳을 입고 그위에다 여름에는 고쟁이
겨울에는 속바지를 입은뒤 다시 단속곳을 입는다.

그리고 단속곳위에 속치마를 입고 치마를 입은뒤 윗옷인 적삼이나
저고리를 입고 다시 두루마기를 입었다.

남녀 모두가 여름에는 겹버선, 겨울에는 솜버선을 신었다.

개화파였던 윤치호는 양복을 신고 구두를 신었지만 꼭 버선을 신고다녀
화제가 돼 다.

그는 또 한복바지 앞부분을 양복처럼 해 개량지어 입었다고 한다.

한복은 저고리와 바지가 분리되는 알타이계복식을 근간으로 이루어진
특수한 옷이다.

한때 온 몸을 덮는 포의민족인 중국의 영향을 받아 복식이 어느정도
변하기는 했지만 지금 남아 있는 한복의 형태는 서민층에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그대로 이어온 것이라고 하겠다.

이제 한복은 평상복의 자리를 잃어버리고 명절에나 입는 의례복으로
생명을 유지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복은 대체적으로 형태가 같다.

저고리나 바지, 두루마기 마고자까지 그 본은 같고 사람의 신체에 따라
그 비율이 달라질 뿐이어서 다양성이 없다.

이것이 현대 복식에서 한복이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또 1940년대까지만 해도 한복은 집에서 주부들의 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정력의 소모는 이루 헤어릴 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손쉽게 사입을 수 있는 양복이 더 편했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복은 거추장스럽고 활동적이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문체부가 어제 매월 첫째주 토요일을 "한복입는 날"로 지정하고 선포식을
갖었다.

우리고유의 한복에 대해 애정을 갖고 발전시켜 재창조해 나가자는 뜻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옷만 한복으로 갈아입는다고 해서 한민족 고유성과 정체성이
확보된다고 믿는 것은 큰 오산이다.

또 "한복입는 날" 운동에 왜 문체부가 나서야 하는 모르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5일자).